오태규 선임기자의 라인강 편지
드디어 이변입니다. 첫 월드컵 본선 출전국인 가나가 세계축구의 강호 체코(국제축구연맹 랭킹 2위)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놓은 것입니다.
쾰른월드컵경기장의 기자석 옆에 있던 흑인 2명이 너무 좋아하기에 “가나에서 왔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잭 오유 실베스터(52·라디오방송 해설자)라고 자신을 밝힌 사람은 “케냐에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가나도 아닌데 그렇게 열심히 응원을 하느냐”고 묻자, 대답이 걸작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다. 우리는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자, 경기장 한켠에서 체코 응원단에 압도돼 주눅이 들어있던 모든 아프리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포효하며 춤을 췄습니다. 가나 선수들도 마치 우승이라도 한듯, 국기를 들고 운동장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첫 출전에 첫 승에다가 아프리카 대륙의 첫 승이니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의 성적표는 형편없습니다. 18일 새벽 4시(한국시각) 경기까지 한국,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시아 4개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게 승점을 챙겼습니다. 앙골라, 코트디부아르, 가나, 토코, 튀니지가 참가한 아프리카 5개국에서도 이날 가나가 첫승을 올렸을 뿐입니다.
앙골라-포르투갈, 일본-호주, 코트디부아르-네덜란드의 경기를 직접 지켜보면서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의 축구수준도 세계수준에 근접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도 왜 아시아·아프리카 대부분 팀들은 유럽이나 남미 팀들에 번번이 당하기만 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실력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촌놈이 서울을 가면 과천에서부터 기듯이’, 싸우기 전부터 주눅이 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축구계가 유럽과 남미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보니, 그들의 텃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시아·아프리카 팀들도 주눅들지 말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량을 펼친다면 승산은 충분합니다.
옆에 있는 가나 기자에게 “가나가 매우 잘싸웠다”고 말하자,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며 “한국팀 최고”라고 화답을 했습니다. “나는 너를 응원할테니, 너는 나를 응원하자”는 의기투합도 금방 이뤄졌습니다. 고난과 좌절·고통의 20세기를 헤쳐나온 아시아·아프리카여! 양 대륙의 기자가 손을 잡고 응원하기로 했으니, 주눅들지 말고 마음껏 끼를 발휘할지어다.
쾰른에서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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