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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문트에 내리는 비 폴스카들의 눈물인가

등록 2006-06-15 21:36

[오태규 선임기자의 라인강 편진]
도르트문트에 내리는 비는 영화 속 ‘산티에고에 내리는 비’만큼이나 처량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두 나라 간의 불행한 역사 때문에 ‘유럽의 한-일전’이라고 불리는 15일의 폴란드-독일전에서 독일이 추가시간에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는 순간, 하늘에서는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목이 터져라 “폴스카”를 외쳐대던 폴란드 관중은 털썩 주저앉아 빗물과 구별되지 않는 눈물을 닦았고, 독일 관중은 “도이칠란트”를 외치며 환호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폴란드 편이 됐습니다. 당한 자로서 같은 아픔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겠지요. 폴란드는 한국처럼,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인 독일과 러시아에 침략을 밥먹듯이 당해왔습니다. 특히 독일의 히틀러는 1939년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독일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요리조리 피해가는 일본과는 달리, 1970년 당시 빌리 브란트 수상이 폴란드 유태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등 진정성이 담긴 과거 청산작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이 아무리 노력해도 폴란드 사람들의 가슴 속 응어리까지 풀어주지는 못한 듯합니다. 바르샤바에서 원정응원을 온 한 노인은 “도이치, 노굿(no good)”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많은 폴란드 청년들은 도심에서 “폴스카”를 외치다가 독일 ‘닭장차’에 실려갔습니다.

경기에서도 이런 역사는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응원석의 분위기는 어느 경기장보다 무겁고 엄숙하고 비장했습니다. 첫 경기에서 에콰도르에 0-2로 진 폴란드 선수들은 이날만은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있는 힘을 다해 악착 같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입니까? 폴란드의 골문 공략을 맡은 두명의 독일 스트라이커인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루카스 포돌스키는 모두 가족을 폴란드에 두고 있는 폴란드계 독일인입니다. 마치 재일동포가 한-일전에서 일본을 위해 뛰는 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선수가 줄기차게 폴란드의 골문을 위협하고 몇번의 결정적인 득점기회를 맞았지만 골로 연결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밤 11시에 경기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침통과 환호가 엇갈렸습니다. 하지만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는 양쪽 응원단의 모습도 간간히 눈에 띄었습니다.

빗속을 달리는 기차를 타고 안정환이 뛰는 뒤스부르크를 지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축구가 역사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역할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도르트문트에서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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