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취임 100일을 맞은 조재기 이사장이 지난달 26일 <한겨레>와 취임 100일 기념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제공
“종교 있으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느닷없는 질문을 한다. “없다”고 하자 “그럼 이제부터 저를 믿어보시겠냐”고 한다. 의도가 궁금해 “무슨 종교냐?”고 묻자 “체육교”라며 껄껄 웃는다. 농담으로 “체육교 교주시냐?”고 되묻자 “‘체육교 전도사’로 불러달라”고 한다. 국민체육 진흥을 맡은 수장다운 우스갯 소리다.
조재기(68) 국민체육진흥공단(체육공단) 이사장은 ‘체육 전도사’다. 체육공단은 지난달 19일 창립 29주년 기념식 때 ‘스포츠의 즐거움을 국민과 함께’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는 “스포츠의 즐거움을 국민과 함께 만들고 누리고 나누는 공공기관이 돼야 한다는 열망을 담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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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으로 일군 기적의 올림픽 동메달
조 이사장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다. 뚝심으로 일군 기적 같은 메달이었다. 사실 그는 몬트리올에 가지 못 할 뻔했다. 국가대표로 발탁되고도 유도·복싱·레슬링 등 체급 경기의 80㎏ 이상 중량급은 메달 가능성이 없다는 정책적 판단 때문에 올림픽 명단에서 잘리고 말았다. “매일매일 죽음의 냄새를 맡아가며 훈련했다”는 말에서 혹독한 훈련 과정이 느껴졌다. 그러니 그 원통함은 오죽했겠는가.
그는 꾀를 냈다. 당시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의 경남고 선배인 동아대 총장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고, 극적으로 몬트리올행에 합류했다.
하지만 몬트리올 올림픽 남자유도 라이트헤비급(93㎏)에서 4위에 머물렀다. “엘리베이터도 신기했고, 파란 잔디밭에 정신이 팔렸다”고 했다. 그는 감독에게 “무제한급 출전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만류하는 임원들 앞에서 삭발 시위를 했다. “내보내 주지 않으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미국에 불법체류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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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행정·경기 3박자 갖춘 수장
우여곡절 끝에 무제한급에 출전했고, 죽을 각오로 동메달을 따냈다. 지금의 금메달보다 따기 어려웠던 동메달이었다. 몬트리올 올림픽 당시 한국은 해방 이후 최초의 금메달(레슬링 양정모)을 비롯해 금 1, 은 1, 동 4개를 따냈다. 그는 “메달을 따니 완전히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하는데 고향(경남 하동)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이 하동군수 관용 지프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그를 반겼다. 그는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조 이사장은 학문적 이론과 행정 경험, 현장감 등 3박자를 두루 갖췄다. 경기인 출신인 데다 스포츠경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한체육회 사무총장까지 역임했다. 그만큼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는 데 능하다. 그는 사람을 운동하게 하는 3단계 에스(S)론을 편다. 1단계는 스포츠 장소와 시설(AS·Area System)이고, 둘째는 프로그램(PS·Program System)이며, 마지막 3단계는 함께 즐길 수 있는 클럽(CS·Club System)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공단은 그동안 다양한 시설을 확충하면서 ‘국민체력 100’ 등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며 “이제는 클럽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조재기 이사장(맨 오른쪽)이 1976년 8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몬트리올 올림픽 유도 무제한급에서 동메달을 딴 뒤 시상대 위에 서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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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설립 30년, 앞으로 30년의 도약대 구실
조 이사장은 흥미로운 대안도 가지고 있다. “외국에서 실험을 해보니 스포츠 강습료를 100달러 받은 클럽보다 무료로 제공한 클럽에 10배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1년 뒤엔 되레 100달러 받은 클럽에 10배 더 많은 사람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스포츠클럽에 1인당 1만원을 내면 시·도 체육회에서 1만원을 붙여서 2만원을 만들고, 이를 대한체육회에서 2만원을 더 붙여서 4만원을 만들고, 문화체육부가 4만원을 얹어서 8만원을 만들면, 결과적으로 1만원으로 8만원의 스포츠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무조건 예산을 산하기관에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운동하는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적은 돈으로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실적을 쌓는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 복지”라고 강조했다.
조 이사장은 문화·체육 분야에서 많이 인용하는 ‘팔길이 이론’을 중시한다. 즉, ‘팔 길이만큼 거리를 둔다’는 뜻으로 직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중시한다. 반대로 관료화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절대 반대다.
88년 서울올림픽의 유산으로 설립된 체육공단은 내년 4월 30주년을 맞는다. 조 이사장은 “서른이면 ‘이립(而立)’이다. 확고하게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서야 한다”며 “새로운 30년을 내다보는 체육공단의 ‘도약대’가 되겠다”고 했다.
김동훈 스포츠 팀장
c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