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첫 외국 나들이를 했다. 동물복지 회의차 간 만큼 그곳이 영국이라는 점은 의미가 깊었다. 그런데 첫 외국 나들이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거리에서 만난 개들’이었다. 대중교통이나 레스토랑의 노천 테이블에서 만난 크고 작은 개들이 어찌나 다 한결같이 얌전하게 주인 곁에 앉아 있던지… 우리 어릴 적에는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배웠다. 그런 말이 뇌리 깊이 있는 나로서는 런던의 개들을 보며 ‘여기는 개들도 신사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 뒤 몇 번의 유럽 여행을 통해 이런 생각은 깨졌다. 영국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문화가 정착되어 있고 동물복지가 확산된 나라에선 모두 ‘신사 개’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의 행동을 절제시키는 사회화 교육이 일상 중에 정착되어 있었다.
유명 연예인의 개가 사람을 물어 사람이 패혈증으로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 무는 개는 안락사 시켜야 하고, 개 외출 때에는 입마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유명인이 연루된 만큼 사회적 파장도 컸다. 사람이 개에게 물려 상해를 입거나 죽은 건 비단 이번 사건뿐만이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가 본질적인 문제를 짚어내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개에게 직접 책임을 부과하는 논의들이 과연 근본적인 대안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그래서 최근 정부나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검토하는 안전 대책안이 자칫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정책’으로 채워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개물림 사고의 대다수는 보호자가 반려견을 방치하거나 행동을 절제시키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더 치명적인 개물림 사고는 대개 비좁은 뜬장에 갇혀 살거나 짧은 줄에 묶여 살면서 인간 가족과 적절한 유대관계를 맺지 못한 채 살아온 중대형견에게서 일어난다. 외곽 길에서 위협을 느끼게 하는 개들 중 상당수는 주인이 있어도 관리되지 않고 돌아다니는 백구들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책안이 먼저 나온 뒤 개물림 안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백구 혼혈견은 외곽 주택이나 공장 등에서 방치하며 키워 사람의 손을 거부하게 된다. 대책 마련이 매우 시급하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우선, 현재 시행 중인 ‘반려동물 등록제’의 전면 개선이 필요하다. 지자체에 반려동물을 등록하고 인식장치를 달도록 하는 반려동물 등록제는 법적 의무사항이지만, 개를 분양받은 이후에는 견주 의지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단속도 사실상 어렵다. 견주가 개 양육에 따른 기본적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일차적인 지점은 분양받는 시점이다. 따라서 반려동물 등록제를 판매 단계에서 해야 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다. 개를 분양받고자 하는 사람은 판매자로부터 개의 출처를 비롯해 개의 특성과 양육 방법, 관련 법 숙지 사항, 사회화 교육의 필요성 등을 고지받았음을 증명하는 절차를 거친 뒤 반려동물을 등록할 수 있도록 한다. 전산시스템으로 고지 절차와 등록을 일원화해 간편하게 처리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일상에서 견주 스스로 할 수 있는 사회화 교육을 안내하는 등 나중에도 돌봄 정보 등 안내 사항을 제공할 수 있다.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을 땐 판매자와 보호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는 사람끼리 분양하는 경우도 있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지만, 판매자로부터 구입한 시점이 있기 때문에 판매 단계에서의 반려동물 등록제는 반려동물 문화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둘째, 개에게 적절한 공간을 제공하지 않을 때 견주에게 책임을 부과하도록 동물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개를 줄에 묶어두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물론 이런 문화가 통용되기 위해서는 개의 사회화 교육이 일상에서 이뤄져야 한다. 인간 가족과 유대관계 없이 갇혀 살거나 짧은 줄에 묶여 사는 개들은 만성 스트레스 상태다. 그래서 비좁은 자신의 영역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방어적으로 공격성이 증가한다. 치명적인 인명사고에는 이런 환경의 개들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맹견일 경우 양육 조건에 엄격한 기준을 둬야 한다.
마지막으로 들개화되는 백구 혼혈견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이 매우 시급하다. 이런 개들이 재개발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외곽의 주택이나 공장 등에서 방치하며 키운 개들이 야외에서 새끼를 낳으면서 사람의 손을 거부하는 개들이 늘게 된다. 크고 낯선 개가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면, 사람이 위협적으로 느끼는 건 당연하다. 지자체가 길고양이 포획 뒤 중성화수술(TNR)을 시행하듯, 이들의 선별적인 중성화 정책도 논의돼야 할 부분이다. 이 문제는 사회로부터 과소평가되고 있는데, 꽤 심각하다.
개는 인간 삶의 질에 기여하면서 사회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인류사의 한 단면이다. 갈등보다는 서로 배려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반려동물 보호자들은 반려견 사회화 교육이 일상화되는 문화 조성에 함께해야 한다. 외국에서 개가 공공시설에 입장하는 것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민간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정부 정책과 법이 이런 흐름을 이끌어야 한다.
조희경/동물자유연대 대표
※‘동물의 친구들’에서는 애니멀피플과 함께하는 동물보호단체의 고민과 목소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