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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생명에게 야박하지 않기를…‘둥이’를 보내며

등록 2019-03-17 14:37수정 2019-03-17 14:54

[애니멀피플] 동물의 친구들
평균 3~4년 길어야 5~7년, 고단한 길고양이의 삶
생전의 둥이
생전의 둥이
“대표님, 둥이가 병원으로 실려 갔어요!”

한 활동가의 다급한 목소리다. 비 오는 마당에 쓰러져 꼼짝 못 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축대 위로 올라가던 중 미끄러져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부랴부랴 동물병원에 쫓아가 봤다. 우리는 혹여 둥이가 척추라도 다쳤나 걱정하며 하반신 마비가 올 경우를 대비한 대화를 나누며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수의사의 진료와 검사 결과 신부전증과 황달 등이 와 쓰러져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결과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징후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급성으로 진행되다니. 어쩌면 밤을 넘기지 못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다음 날 아침, 동물자유연대의 대표 길고양이 모델 둥이는 고양이별로 돌아갔다.

2012년 가을에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구석진 어디에선가 태어난 둥이는 평생을 동물자유연대에서 살았다. 특히 마당 축대 위에 있는 수수꽃다리 나무를 좋아했고 그 나무는 둥이 가족의 놀이터였다. 둥이 가족은 활동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예방주사도 맞는 등 아주 괜찮은 삶을 사는 듯했지만 길고양이 새끼들의 높은 폐사율 벽을 넘지 못하고 둥이만 남아 일곱 해를 살았다.

둥이(오른쪽에서 두번째)와 가족의 어린 시절.
둥이(오른쪽에서 두번째)와 가족의 어린 시절.
행당동 동물자유연대 사무실 마당엔 나무와 잔디가 있다. 길고양이에겐 최적의 장소이다. 아침저녁으로 깨끗한 물과 밥상 차림이 있는 곳이며 겨울이면 볏짚단과 두툼한 담요가 깔린 집이 조공으로 받쳐지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동물자유연대 사무실 마당은 길고양이들의 묘생(猫生)이 그림처럼 존재한다. 지나가던 고양이가 잠시 머물며 한숨 쉬어 가는가 하면 평생 눌러앉으려는 녀석도 있다. 대부분의 고양이가 고단하게 살아온 이력을 얼굴에 담고 이곳에 온다.

첫발을 들이고 밥을 먹는 한동안은 눈 양 끝이 하늘로 치켜 올라 있고 ‘터줏냥이’들을 향해 잔뜩 신경전을 벌인다. 상대 고양이들을 제압하겠다는 의지다. 나는 그런 고양이들을 보며 ‘인마! 눈 내려! 허세 부리지 마!’라고 하는데, 한동안 눈 추어올리고 다니던 녀석들이 몇 달이 지나면 눈꼬리가 내려오기 시작하며 착한 고양이 얼굴로 바뀐다.

우리에게 곁을 주지는 않지만 마당에는 그들만의 룰이 있고 그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늘 꼴찌 신세였던 녀석도 강한 녀석과 협상이 잘되면 2인자 노릇을 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우리의 눈에서 사라지는 고양이도 있다. 수년 동안 잘 살다가 어느 날부터 안 보이기 시작하면 활동가들은 마음을 졸인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 혹 어느 구석에 파묻혀 시름시름 앓다 죽은 것은 아닌지, 교통사고로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객사한 것은 아닌지, 고양이를 향한 희비가 존재한다.

고양이의 생태 수명은 15년 정도인데 도시 길고양이 수명이 3~4년이라는 것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나마 깨끗한 급식과 안정적인 서식을 보장받으면 5년에서 7년 정도를 사는 것 같다.

이렇듯 그리 길지 않은 길고양이의 삶조차 보기 역겹다고 항의하는 주민을 달래고 가는 것도 캣맘들의 숙명이다. 고양이들로선 자신들이 도심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에겐 그저 혐오스럽고 치워버려야 하는 존재로 낙인되는 것이 서럽다.

남양주 동물자유연대 동물보호시설에서는 한동안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새 건물이건만 날씨가 추워지니 건물 내로 산쥐들이 들어와서 사무실과 창고가 난장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단체가 쥐약을 살포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쥐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검토해봤다. 하지만 개와 고양이들이 있는 시설이어서 쥐를 내쫓는 대안을 적용하는 것도 적절치 않았다.

그렇게 쥐 때문에 골몰하던 중 건물 주변에 찾아든 고양이 두어 마리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며 우리의 고민은 단번에 해결되었다. 쥐들이 건물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시설 내에 고양이 수십 마리가 있어도 해결하지 못한 고민을 건물 주변에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 두어 마리가 해결해줬다.

이제 곧 봄이다. 올망졸망한 아기고양이들이 도심 곳곳에 출현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새 생명에게 야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우리도 적절한 도움을 받게 된다. 그것이 바로 상생 아닐까?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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