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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사자 가족의 ‘미국 이민’이 남긴 것

등록 2018-07-23 08:59수정 2018-07-23 10:07

[애니멀피플] 동물의 친구들
3년 전 사육사 숨진 비극적 사고
사자에게 책임 물을 수 있을까?
머리 맞대어 ‘미국 이민’ 결정했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야생동물보호소에 새 보금자리를 얻은 다크. 적응훈련을 거쳐 넓은 방사장으로 나간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야생동물보호소에 새 보금자리를 얻은 다크. 적응훈련을 거쳐 넓은 방사장으로 나간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원 내실로 들어서자 가슴을 에는 듯한 처연한 사자의 울음소리가 둔중하게 울려 퍼졌다. 회한의 울음일까, 자신의 운명이 또 갈릴 것에 대한 두려움 섞인 원망의 울부짖음일까. 이제 희망의 땅으로 갈 것이라는 말을 해준다 한들 그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사자들에게는 지금 공포가 전부이다. 그들은 복잡한 상황을 느끼고 판단하며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이 아닌 주어진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런 동물을 인간이 잡아와 가두고 새끼를 낳게 해 또 다른 감금 시설로 보내며 동물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의 본능을 지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동물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무너지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이 닥치기도 한다.

2015년 2월12일, 인간과 동물의 거리가 무너졌고 그 순간에 있었던 존재들 모두에게 불행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의 사육사가 관리하던 사자들에 의해 명을 달리 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자들도 휘청거리는 장대 끝에 올라탄 운명이 됐다. 결론적으로, 살상을 한 사자들에게 인지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견이 우세해 목숨만은 건졌다. 그렇게 사자들은 세간의 관심에서 벗어나 깊은 어둠의 길로 들어섰다. 그들의 이름은 다크(2006년생 수컷)와 해리(2010년생 암컷)이다. 사건 이후 다크와 해리는 불과 여덟 평 남짓한 콘크리트방에서 3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다. 외부와 통하는 것은 오직 천정에 있는 작은 창 사이에서 들어오는 햇볕뿐이었다. 힘겨운 세월을 보내는 사이에 새끼 해롱이(2015년생 암컷)가 태어난다. 설상가상으로 해롱이는 장애가 있어 지속적인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다.

동물자유연대는 사자 가족을 더는 이런 상태로 두고 볼 수는 없어 동물원으로부터 구조하는 계획을 한다. 하지만 국내 어디에도 사자 가족 세 마리를 보호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외국의 야생동물보호기관(생추어리·sanctuary)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고양잇과 동물을 보호하는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생추어리 다섯 곳에 이메일을 보내 사자 가족의 안타까운 처지를 알렸다. 다섯 군데 모두 사자들을 받겠다고 확답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우리는 그들과 신중한 대화를 하는 가운데 사자 가족들이 이주하기에 적절한 곳을 살펴나갔고, 최종적으로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야생동물보호소(The Wild Animal Sanctuary·TWAS)에 보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

살상을 한 사자들에게 인지적 책임이 있을까? 사자 다크가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있었던 때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살상을 한 사자들에게 인지적 책임이 있을까? 사자 다크가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있었던 때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미국 덴버의 야생동물보호소(TWAS)의 사자들. 넓은 공간을 갖춘 야생동물 전용 동물보호소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미국 덴버의 야생동물보호소(TWAS)의 사자들. 넓은 공간을 갖춘 야생동물 전용 동물보호소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그 뒤 어린이대공원과 협상을 하며 사자들 이주를 성사시켰다. 수월한 과정은 아니었으나 어린이대공원의 적극적인 협조로 사자들은 6월27일 한국을 떠나 미국 이민 길에 오른다. 마취를 하고 운송 상자에 넣어 항공기 탑승까지 13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까지 항공기로 11시간,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검역과 반입 승인을 지나 덴버의 생추어리까지 육로로 17시간… 영문도 모른 채 비좁은 상자에서 총 41시간을 견뎌낸 사자들은 6월29일 저녁 새로운 보금자리에 무사히 도착했다. 사자들의 ‘아메리칸 드림’ 여정이었다.

모두에게 비극적인 이런 사건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이 사건은 야생동물을 좁은 공간에 가두는 전시시설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인간의 볼거리 충족을 위해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의 전 생애를 가두는 것, 이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 부족할수록 그 동물들이 느낄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발생할 사고의 위험성도 크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현재 환경부에서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을 개정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 법은 야생생물을 보전·연구하고 생태와 습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해 생물다양성 보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동물원 중에서 이 목적에 부합하는 곳이 단 한 곳이라도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생물다양성 보전에 기여할 만큼의 순혈종들이 유지되는 개체가 얼마나 될지 그조차도 회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동물원·수족관법이 동물원의 상업적 존립 기반을 뒷받침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이제라도 바로잡는 절차와 법이 마련돼 야생동물이 본능을 억제당하며 볼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줄여나가야 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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