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복날을 지나며 혼자 남은 흰둥이. 곁을 지키던 얼룩이는 사라질 줄 몰라 사진을 찍어두지 못했다.
골목에 들어와서 우측 장독대 안에 발바리 한 마리, 오른쪽으로 꺾어진 길을 돌아 좌측 오래된 집의 열린 문안에 누런 진돗개 두 마리, 오른쪽 밭 옆의 얼룩이와 흰둥이, 그리고 또….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 집집마다 개가 있다. 나는 이 개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결국 짖으면서 꼬리를 흔드는 녀석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하지만 여름만 되면 한두 마리씩 꼭 사라져 마음이 자주 시렸다.
15년째 이 마을에서 사는 산 아래 집 아주머니가 말하길, “이 동네엔 부자도 있지만 몇몇 주민들은 시골집 한 칸 간신히 가지고 농사 짓고 사시는 노인들이야. 그깟 농사 지어봐야 큰 돈 안되지. 이 분들께는 복날에 보신탕 한 그릇 해 드시는 게 그저 한 해를 버텨내는 방법이야.”
그래서, 반려동물이 무엇이고 동물복지가 뭔지, 하는 말이 과연 통할까 싶어 그저 외면하고만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일은 또 벌어졌다.
지난 봄이었다. 윗집 언니가 찾아와 말했다. “어떡해. 강아지들 상태가 말이 아니야. 물도 제때 안주고 밥도 남은 밥 있을 때만 주더라고. 가까이 가서 보니 피부병에 설사까지 하는 게 곧 죽을 것 같아.”
“아래 밭에 할머니가 새로 들여놓은 강아지 두 마리 말하는 거야? 흰둥이랑 얼룩이?”
“응, 아무래도 병원에 데려가야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런데 그 집 할머니한테는 어떻게 말하려고?”
용기 있는 윗집 언니는 할머니와 실랑이 끝에 병원에 데려가진 못하더라도, 우리가 약을 먹이고 속이 편안해지는 사료를 먹이는 데는 동의를 받아냈다.
다행히 강아지들의 병은 심각한 전염병이 아닌 내부기생충에 의한 장염증이었다. 기생충 약과 약간의 항생제를 처방 받아 먹은 후 설사 증세는 금방 나아졌다. 하지만 피부병인 ‘개선충증’은 면역력이 약한 탓에 심해졌는데, 쉽게 치료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약을 바르고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훨씬 좋아질 수 있었다.
할머니께 피부에 좋지 않은 짠 음식 찌꺼기를 먹이지 마시라고 하고, 양질의 개 사료를 사다 드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탐탁지 않아 하시며 사다 놓은 사료도 잘 안 주시고, 여전히 물도 잘 챙겨주시지 않았다. 결국 윗집 언니가 나서 하루 두 번씩 그 아이들의 사료와 물을 챙겼다. 잘 먹은 강아지들은 나날이 체구가 커졌다. 살려줬다고 고마웠는지 매번 살갑게 우리를 맞았다.
그런데 언니와 나는 여름이 다가오는 것이 너무 걱정됐다. 한여름 복날이면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이 모여 개를 잡곤 했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을 잡아먹겠다고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불안했다.
“이 강아지들을 어쩌지?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한담?“
둘이서 머리를 맞대봐야 뾰족한 수가 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노인 분들과 친한 산 아래 집 아주머니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
“보신하려고 하는 건데, 올해는 노인들도 힘들어서 직접 개를 잡지 않으실 수도 있대. 다른 몸보신 하시라고 비용을 마련해드리면 어떨까?”
“마을 노인 분들이 열댓 분 정도니, 넉넉히 드려야 할 텐데, 우리 둘이서 다 내긴 힘들겠지?” 내가 걱정스레 말했다.
“저기 아래 소나무집 어머님도 반려동물을 무척 사랑하는 분이야. 저번에는 다리가 부러져서 버려진 강아지도 구해서 키우시더라고!” 언니가 말했다.
소나무집 어머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상당한 돈을 모았다. 그리고 마을회관에 찾아가 혹여나 기분이 상하시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개들 보니까, 기생충도 많고 전염병도 돌아서, 이 개를 드시면 마을 분들 건강에 오히려 안 좋을 것 같아요. 더운 여름 기운 내시라고 저희 마을 신입 회원들이 모은 것이에요. 이걸로 더 좋은 것 사드셔요.”
마뜩잖아 하시던 마을회관 어머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이내 봉투를 받아 드셨다. 그리고 며칠 수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다. 넉넉히 드린 탓에 비용이 남았는지 여러 사람을 초대했다. 시중에서 먹을거리를 사오신 듯 했다. 무사한 얼룩이와 흰둥이를 보고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을을 설득했다는 마음에, 뭔가 큰 캠페인이라도 해낸 듯 자신감도 생겼다.
그런데 10여 일 후, 결국 얼룩이가 사라졌다. 중복이었다. 윗집 언니가 울며 따지자, 얼룩이네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가 개를 먹어야 보신이 된다고 해서 말이지. 아휴, 알았다고 알았어. 다음에는 안 먹을게!“
“그걸 어떻게 믿어요? 지난 번에 저희랑 그렇게 약속하시고서는. 개 도살하는 것 불법이라고요. 이번엔 진짜 신고할 거라고요!“
울며불며 싸우려는 윗집 언니를 겨우 집으로 보냈다. 언니를 돌려보내고 들른 밭에 흰둥이가 혼자 남아 있었다. 여전히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지만 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이 아이는 어떡하지. 곧 말복이 다가오는데….’ 고민하고 있는데, 소나무집 어머님이 어느새 옆에 있었다.
“흰둥이 내가 데려가 입양할게요. 너무 걱정 말아요.”
그새 윗집 언니가 모셔온 것이었다. 너무 안심이 됐는지, 바보같이 대답도 못하고 눈물만 핑 돌았다.
멀고도 험한 동물보호의 여정
동물복지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동물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1800년대만 해도 노예는 물건처럼 사고팔 수가 있었습니다. 여성도 아동도 심한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 생각에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권리란 없었습니다. 전통적이라는 이름으로 차별이 정당화되는 시절이었습니다. 개를 잡아먹는 보신문화도 전통이라서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또 다른 사례로 아프리카의 여성 할례 등에 대한 방어논리와 동일합니다. 결국 전통은 그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을 때 지키는 것이 맞습니다. 생명의 존엄을 파괴하고 해당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무엇으로도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우리 인간은 고기를 먹을 수도 있지만,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잡식성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건강은 둘째 치고라도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동물성 위주의 식단에 전환을 가져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대만의 동물보호단체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개 식용 금지의 입법화를 추진하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하였습니다. 빠르기로 유명한 한국은 얼마나 걸릴지 기대해봅니다.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