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한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왼쪽 첫째) 일행이 하부영 현대차 노조위원장(오른쪽 첫째) 등 노조 간부들과 ‘광주형 일자리’ 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의 신설법인 합작투자 협상이 4일 잠정 타결되면서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노사상생형 지속가능 경제 시스템의 초석을 놓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은 가까스로 좌초 위기를 피했다. 하지만 여전히 광주형 일자리 완성차 공장에서 생산할 차종이나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상황을 두고 선호와 진단이 제각각이다. 이번 광주형 일자리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반발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 지방정부 주도의 사회적 대타협 이번 잠정 협상 타결은 지방정부 최초로 노·사·민·정 대타협을 끌어낸 일자리 창출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광주시와 현대자동차는 국회 예산안 통과를 앞두고 4일 잠정적으로 협상을 매듭지었다. 양쪽 협상은 지난달 1일 ‘광주형 일자리 합의문’이 나온 뒤 급속하게 얼어붙으면서 한때 무산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한국노총 광주본부 등 지역 노동계로부터 포괄적 협상 전권을 위임받은 광주시 협상단은 지난 6월 잠정 합의안을 바탕으로 최종 협상안을 조율해왔다. 양쪽은 국회 예산안 처리 전에 잠정 합의안을 극적으로 도출했다. 광주시가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해 정부에 요청한 예산은 2912억원 규모다.
최종 협상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시와 현대자동차 사이에 잠정 작성한 합의서엔 신설법인의 임금수준이나 위탁물량 등의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노동자 평균 초임은 연 3500만원 수준, 적정 노동시간은 주 44시간(격주 토요일 8시간 근무)으로 합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까지 핵심 쟁점이었던 ‘5년간 단체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노동계 의견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형 일자리는 국내 첫번째 사회적 대타협 모델로 꼽힌다. 이 모델은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2014년 6월 지방선거 공약으로 처음 제안하면서 주목받았다. 2000년대 초반 독일 폴크스바겐사에서 별도의 아우토5000이라는 법인을 신설해 고용을 창출했던 것을 염두에 둔 프로젝트였다. 전문가들은 “위탁생산이라는 점에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동희오토와 외형적으로 유사하지만, 도급회사를 두지 않고 정규직을 채용하며 복지 인프라를 제공하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 기대 효과 광주의 일자리 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도 2200만원으로 전국 평균의 70%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해 순유출자 8118명 가운데 66%가 20~30대 청년층이다.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하면 직간접 일자리 1만2000여개가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다른 도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적지 않다. 한국지엠이 문을 닫은 군산이나 조선업 경기가 침체된 경남 거제 등이 제2의 광주형 일자리 도입을 검토할 만한 지역으로 꼽힌다. 산업계 일각에선 유럽과 미국, 일본처럼 국외로 떠난 제조업 공장들이 국내로 다시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인지에 주목한다. 백승렬 어고노믹스 대표는 “약간의 세제 혜택을 준다고 해서 해외로 나간 제조업 공장이 되돌아오기 힘들다. 임금과 노사관계의 혁신 모델이 안착되면 장기적으로 해외로 나갔던 국내 제조업 공장을 되돌리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남은 문제는? 광주형 일자리 정책이 지방정부가 직접 투자하는 첫 사례라는 점은 적잖은 부담이다. 일각에선 “신설법인 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인 경차 에스유브이(SUV)의 판매가 부진할 경우 광주시가 우회 투자한 590억원과 금융권에서 끌어들일 4200억원의 투자가 고스란히 시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빛고을국가산업단지를 ‘친환경차 생산 전진기지’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한 축에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반대하고 있는 점도 변수다.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이날 긴급성명서를 내어 “광주형 일자리는 자동차 산업 시설이 남아도는 탓에 과잉중복 투자로 모두가 함께 망하는 길”이라며 “자동차 산업에 위기와 파탄을 가져올 광주형 일자리가 합의된다면 총파업을 감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대하 신동명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