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아파트 참사’ 피의자 안아무개씨가 지난달 12일 저녁 윗집 현관문에 오물을 뿌리고 있다. 윗집 주민이 설치한 폐회로텔레비전에 찍힌 화면. 경남경찰청 제공
지난 17일 중증 정신질환자에 의해 발생한 ‘진주 아파트 살인 사건’과 관련해 치안·복지 서비스와 이웃공동체 등 사회안전망이 더 촘촘했더라면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들의 수차례 신고에도 불구하고 피의자 안아무개(42)씨의 조현병 병력이나 폭력 전과 등은 경찰이나 보건소, 동사무소 등에서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일 경찰 설명을 들어보면, 피의자 안씨는 2010년 폭력 행위로 구속된 뒤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조현병’ 판정을 받았다. 또 안씨는 2015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진주 정신병원에서도 조현병 치료를 받았지만, 이후엔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했고 약도 복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는 피해망상에 줄곧 시달려왔다.
이런 피해망상 때문에 안씨는 2015년 12월 진주시 가좌동 ㅈ아파트에 입주한 이후 아파트관리사무소의 단골 민원인이었다. 걸핏하면 “윗집에서 벌레를 던진다” “다른 사람이 나를 감시한다”는 등의 고통을 호소했다. 어떤 때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욕을 하거나 소리치기도 했고, 이웃집에 찾아가 층간 소음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거나 오물을 쏟아붓기도 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이웃 주민들과 마찰이 잦았다. 그는 올해 들어서만 7차례 경찰에 신고됐는데 이 가운데 5차례가 아파트 주민들과의 마찰이었다. 하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마지막 한차례만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했고, 나머지는 네차례는 모두 “단순히 아파트 주민들 사이의 시비”로 판단하고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경찰이 안씨의 전과 기록이나 병력을 확인한 것은 이번 사건이 터진 뒤였다.
안씨에게 치료 약물이나 상담을 제공했어야 할 관할 보건소나 동사무소도 안씨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건소 산하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등록된 정신병력자를 관리하지만 안씨는 등록돼 있지 않았다. 본인이나 보호자가 센터에 등록해야 알 수 있는데 안씨는 스스로 등록하지 않았고 혼자 살기 때문에 대신 등록해줄 가족도 없었다.
이런 점 때문에 중증 정신질환자나 정신질환으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있는 사람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관할 경찰서나 보건소에서 파악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불쾌감을 줬던 정도의 사건으로 경찰이 피의자를 격리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경찰은 정신질환 이력을 조회할 수 없고, 보건소에선 정신질환자의 범죄 이력을 확인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사회 한가운데 방치된 것”이라고 말했다. 황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중증 정신질환자가 병원에서 나왔을 때 사회에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에서 당사자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공식적인 사회안전망 외에 지역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씨와 같은 범죄 경력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지켜보면서 도와주거나 통제할 이웃이 있었다면 가족이 없는 안씨라도 그 위험성을 사전에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윤난실 경남도 사회혁신추진단장은 “주민들이 아파트를 공동체로 인식했다면, 안씨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직접적 피해자 몇몇이 아니라 입주자단체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면 경찰이나 보건소의 대응도 달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해를 본 이웃 주민들은 안씨의 위험성을 수차례 인지했지만 주민들 스스로도,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어찌하지는 못했다. 관리사무소 쪽은 “우리는 임대아파트 관리자인 토지주택공사에 ‘안씨를 내보내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광주 광산구에서 아파트 마을공동체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종민 하남종합사회복지관장은 “중증 정신병력자는 반드시 징후를 보인다. 이럴수록 가족과 친구가 필요하다. 누군가 곁에 있다면 쉽게 극단적 상황으로 가지 않는다. 또한 동사무소, 보건소 정신건강지원센터, 복지관, 경찰서 등이 중증 정신병력자의 정보를 공유해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원 정대하 채윤태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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