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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암마을’의 분통…“3년전 부실 역학조사탓 공장 그대로”

등록 2019-11-29 07:10수정 2019-11-29 07:15

르포 l ‘제2 장점마을’ 남원 내기마을
아스콘공장옆 50여명중 14명 ‘암’
95년 600m 거리에 공장 생긴뒤
농작물 말라죽고 암환자들 속출
“환경부에 재조사 주민청원 할 것”
“박근혜정부때 제대로 조사 안돼”
“여러 요인” 모호한 결론 내고 끝
“자식들도 그만 고향 떠나라 성화”
3년전 조사 참여한 환경연구소장
“쇄석공정서 실외라돈 높은데도
역학조사 결과에 반영 안됐다”
전북 남원시 이백면 내기마을 뒷산에서 본 아스콘 공장. 공장 안에 쌓여 있는 골재 뒤로 마을이 보인다.
전북 남원시 이백면 내기마을 뒷산에서 본 아스콘 공장. 공장 안에 쌓여 있는 골재 뒤로 마을이 보인다.

“아마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으면, 3년 전 우리처럼 전북 익산 장점마을도 주변 공장이 주민 건강에 직접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학조사 결과를 소신껏 말하면 학자들도 보복을 당할지 모르니까요.”

지난 27일 전북 남원시 이백면 강기리 내기마을 회관에서 만난 이장 김중호(53)씨의 말에는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14명의 암 환자가 나온 남원의 내기마을도 3년 전 박근혜 정권 때가 아닌 지금 역학조사를 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거라는 얘기다. 그의 아버지는 5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내기마을 주민들의 고통은 1995년 마을에서 약 600m 떨어진 곳에 아스콘 공장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농작물이 말라 죽었다. 그 뒤 암 환자들이 속출했다. 익산 장점마을처럼 주민들은 마을 인근의 아스콘 공장을 의심했다. 아스콘을 만들 때 흩날리는 실외 라돈 등이 원인으로 거론됐다.

내기마을 이장 김중호씨가 아스콘과 골재 등을 다루는 마을 주변 공장을 가리키고 있다.
내기마을 이장 김중호씨가 아스콘과 골재 등을 다루는 마을 주변 공장을 가리키고 있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2006년 5월, 환경부와 전북도청 등에 주민 생존권 보호를 위한 아스콘 공장 폐쇄(이전) 조치를 탄원했다. 2015년 1월부터 2016년 5월까지는 질병관리본부 주관의 암 역학조사도 이뤄졌다. 하지만 2016년 11월18일에 발표된 역학조사 결론은 장점마을과 달랐다. “조사 지역에서 발생한 폐암은 지역에서 추정된 다핵방향족화합물(PAHs)의 증가, 가구별 실내 라돈의 수준, 그리고 흡연력 등의 영향을 받았고, 이 요인들 간의 상승작용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판단됨.” 유해물질과 암 발병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 11월14일 환경부의 익산 장점마을 환경오염과 주민 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내기마을 사람들은 부러움과 함께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김 이장은 “평균 50~60명 사는 마을에서 암환자 14명이 나온다는 게 말이 되나. 이 마을에는 아스콘 공장 말고는 다른 공장도 없다”고 말했다. 내기마을의 현재(10월 기준) 인구는 49명에 불과하다.

내기마을 조사에 참여한 김정수 환경안전건강연구소장은 “아스콘 공장에서 쇄석하는 공정에서 실외 라돈이 높게 나와서 주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반영이 안 됐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이 하나둘 세상을 등지는 사이 남은 이들은 지쳐만 갔다. 수년 전 폐암으로 남편과 이별한 주민 형아무개(77)씨는 “방송에 인터뷰가 나오면 주변에서 연락이 온다. 좋은 일도 아니고 마을 이미지만 나빠진다며 싫어하고 우리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도 기피한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자식들도 명절에 내려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만 고향을 떠나라’고 성화하는 통에 우리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전했다. 갑상샘암 때문에 10여년 전에 수술을 받은 이 마을 부녀회장 김연옥(76)씨는 “호르몬을 제대로 생성하지 못하니까 아침마다 알약을 먹는다. 늘 피곤하고 힘들다”고 말했다.

남원시는 1993년부터 2014년까지 발병자 수가 모두 17명(13명 사망)이라고 28일 밝혔다. 공장이 들어선 뒤인 1997년부터는 모두 14명이다. 시는 2015년부터 올해까지는 암 발병자가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지만 주민들은 시를 불신했다.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과는 빈손이다. 한 주민은 “남원시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제대로 원인을 밝히기 위해 환경부가 재조사하도록 주민 청원을 낼 예정이다. 남원시는 주민 청원이 들어오면 전북도와 협의해 환경부에 건의할 방침이다. 노인이 많은 이곳 주민들에게 갈 길은 험난해 보였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전북 남원시 이백면 내기마을 회관에서 주민들이 역학 재조사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오른쪽은 마을 이장 김중호씨. 주민들은 “그동안 방송 인터뷰 등에 많이 나왔다. 그러면 주변 분들한테서 연락이 와서 마을의 부정적 이미지만 쌓인다는 등 싫은 소리를 한다. 심지어 자식들도 기피한다”며 얼굴 노출을 꺼렸다.
전북 남원시 이백면 내기마을 회관에서 주민들이 역학 재조사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오른쪽은 마을 이장 김중호씨. 주민들은 “그동안 방송 인터뷰 등에 많이 나왔다. 그러면 주변 분들한테서 연락이 와서 마을의 부정적 이미지만 쌓인다는 등 싫은 소리를 한다. 심지어 자식들도 기피한다”며 얼굴 노출을 꺼렸다.

내기마을 이장 김중호씨가 3년 전 모호한 결정이 난 역학조사 최종 결론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내기마을 이장 김중호씨가 3년 전 모호한 결정이 난 역학조사 최종 결론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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