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의회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위 등 단체와 기관의 회원들이 20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앞에서 무죄판결을 반기고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 제공
“국회는 법원과 검찰도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의 재심에서 무죄가 나오면서 20년째 특별법 제정을 미루고 있는 국회로 화살이 날아가고 있다. 여순지역 시민단체들은 “책임을 미뤄온 입법부가 끝내 사법부의 압박을 받게 됐다”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여순민중항쟁 전국연합회는 21일 “이번 판결은 굴곡진 역사를 바로 잡는 출발점이다. 재심을 통해 ‘빨갱이’의 굴레를 벗을 때까지 방관했던 국회는 유족·주민한테 사죄하고,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는 “당시 군법회의에서 처벌받은 피해자 수천명을 구제하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하겠다. 피해자들한테 명예회복을 떠넘기지 말고 국회가 제구실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20년 전인 16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아직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18·19대 국회에선 논의가 미뤄지는 바람에 자동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선 정인화·이용주·윤소하·주승용·김성환 등이 주도한 법안 5개가 발의됐다. 법안들은 진상조사와 명예회복, 피해보상, 위령사업 등을 담았지만 수년째 행정안전위 법안심사소위에 묶여 있다. 제정하려면 단일안을 만들어 행정안전위 소위와 전체 회의, 법사위원회 소위와 전체 회의, 본회의 등 5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우경 여순민중항쟁 전국연합회 사무국장은 “보수적인 법원과 검찰의 태도가 달려진 데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국회는 여전히 민심에 귀를 막고 있다. 발의자가 의원 295명 중 46.8%인 138명인데도 통과될 기미가 없다. 민주당에서 이해찬 우상호 홍영표 이인영 등이 동참하지 않아 서운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번번이 특별법이 무산된 이유를 뿌리 깊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역대 집권세력의 미온적 태도에서 찾고 있다. 제주4·3과 여순사건은 1948년 정부 수립기 혼란스런 역사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여순사건에는 ‘반란’, ‘항명’ 등 굴레가 추가로 들씌워지면서 재평가에 70년 이상이 걸렸다. 자유한국당은 아예 당론으로 재평가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족들은 지난달 국회에서 특별법안의 자동폐기를 막기 위한 사진전과 토론회를 열었다. <라이프> 기자 칼 마이던스가 찍은 당시 참상을 알리고, 보상 관련 조항을 삭제하겠다는 선언을 했지만 반향은 없었다. 이들은 지난해 9월6일부터 국회 앞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은 “당시 군법회의에서 처형된 민간인 대부분이 무죄이고, 유족들은 70~90대에 이르러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생존자가 숨지면 진상을 알기도 어렵고, 명예를 회복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여순지역 시민단체들은 특별법 제정을 앞당기기 위해 10만명 서명운동과 총선공약 반영 요구 등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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