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공간에 아로새긴 ‘타는 목마름’

등록 2008-07-04 19:05

〈공간으로 본 민주주의〉
〈공간으로 본 민주주의〉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공간으로 본 민주주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아지북스 기획, 서경석 지음/아지북스·1만원

서울광장에 나갈 적마다 감동을 주는 장면을 보게 된다. 부모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든 어린아이들을 만나서 그렇다. 저 고사리 같은 손에 들린 촛불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시위 현장에 오는 부모의 마음은 무엇일까. 세대 착취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라 볼 수 있을 성싶다. 다음 세대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무책임에 대한 분노인 셈이다. 또한, 정치 사안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음 세대가 현장에서 겪어보기를 바라는 심정이 담겨 있는 듯싶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촛불시위를 이익과 이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한다. 물론, 회의론자들이 시위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리라. 잠재적 피해에 대한 분노에 필적할 만한, 더 가난하고 어렵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시위에서 또다른 의미의 연대를 확인한다. 이른바 ‘세대 연대’이다. 촛불시위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것은 청소년들이었고, 이에 뒤늦게 기성세대가 반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어린이들도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이번 일을 공간으로 기억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었다. 특정한 날짜로 기억하기에는 정리하기 어려운 일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워낙 긴 기간에 걸쳐 숱하게 열렸고, 정권의 반응도 시시때때로 변한데다, 종교인들의 참여로 꺼질 듯한 불도 다시 켜지는 극적 상황도 있었던 탓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서울광장과 광화문 네거리에 펼쳐졌던 민주주의의 난장이다. 이른바 386세대와 다른 시위문화를 선보였고, 다수 시민의 지지를 얻어내며 도덕적 우월성마저 확보해냈다. 기념할 날보다 기억할 공간을 확보해냈다는 것은, 시민사회가 드디어 광장을 획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그 광장은 권력자의 수중에 있었는데, 이제 판도가 바뀐 것이다.

촛불 든 고사리 손을 바라보며, 다른 한 손에 책을 한 권 쥐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바짝 타오르다 곧 사그라지지 않게, 그들의 가슴에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지속적으로 불타게 해줄 땔감 같은 책은 없을까 둘러보았다. 그러다 만난 책이 <공간으로 본 민주주의>다. 민주화의 역사를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공간을 배경으로 설명하고자 한 것은 신선한 발상 전환이다. ‘신문사와 방송국’ ‘학교’ ‘교회와 성당, 절’ ‘광장’ ‘일터’ ‘사이버 공간’으로 나누었는데, 너무 많은 것을 일러주려 욕심 내지 않았고 시각자료도 좋다. 칼로리가 적절한데 때깔도 곱다는 뜻이다.


이 책만 보아도 세상은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권력이 동아일보에 광고 탄압을 할 적에 시민들은 격려광고를 내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외려 시민들이 몇몇 신문들에 광고 내지 말자 운동하고 있다. 일탈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사이버 공간은 시민들의 직접 행동을 가능하게 한 진원지가 되었다.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한 권의 책을 읽고 민주주의 역사와 그 의미를 토론할 수 있다면, 이보다 값진 일은 없다. 모쪼록 이 책이 그런 자리에 ‘교재’로 쓰였으면 좋겠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