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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리스토텔레스, 신자유주의에 옐로카드

등록 2008-09-26 20:46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홍기빈 지음/책세상·4900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관련 글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에 관해 이미 그가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늘 아래 새것 없다는 것이야 일찌감치 깨달았지만, 마르크스의 학문적 젖줄이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닿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읽은 책이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이다.

책 제목에 경제를 말하다, 라는 구절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하긴, 고전을 정작 읽어본 경우는 흔하지 않은지라 <정치학>을 정치하게 읽어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철학서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어 읽으면 경제학을 주제로 삼은 내용을 허투루 볼 가능성이 크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을 볼라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학이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성토하는 데 도움 되는 이론체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후예로 마르크스, 베블런, 폴라니, 케인스가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기도 한다.

지은이의 설명을 따라가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경제의 어원은 가정관리를 뜻한다. 이는 그리스 사회가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활단위로 구성되었다는 말이다. 당연히, 욕망의 절제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운 사회라 상상할 수 있다.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삶을 행복하게 여겼는가 하는 점이다. 이 중용의 철학자는 “인간적 이성을 모두 끄집어내어 풍부하게 발전시키고 꽃피우”고, 나아가 “그것을 바깥 세상에 실현하여 세상을 더 아름답고 인간적으로 바꾸는 것”이라 했다.

아고라는 그리스 민주주의의 토대였다. 그리고 민주정의 발전에 따라 이곳에서 시장경제가 활기를 띤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시장경제 역시 고대 그리스의 발명품이다. 그런데 역사의 간지인지 저주인지, 화폐와 시장경제가 폴리스의 정신적·도덕적 기초를 뒤흔드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역시 도덕적 국가로서 폴리스를 재건하려는 소크라테스의 뒤를 잇고 있는바, 오늘에 이르러 더 진가를 발휘하는 그의 독특한 경제철학이 설파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그의 시대에 이미 사람들은 경제활동의 의미를 지금과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가족 성원들의 행복한 삶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물질적 수단의 조달”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사회에 만연한 부정적 현상에 맞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활동을 둘로 나누고 무엇이 앞자리에 놓여야 하는지 묻는다. 프락시스는 어떤 결과를 목적하지 않는다. 활동 그 자체를 목표로 할 따름이다. 이에 반해 포이에시스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행복론을 기억한다면, 답은 너무 뻔하다. 프락시스가 우선될 때 에우다이모니아, 그러니까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시장만능주의가 30년 가까이 판을 쳤다. 그 결과는,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미국발 금융위기다.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학의 고갱이가 절제와 자립이라 말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을 그의 뜻과 정반대로 살아왔다. 고전을 오래된 미래라 하지 않았던가. 그의 말에 다시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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