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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간 안보의 열쇠 ‘민주주의’

등록 2008-08-01 19:08수정 2008-08-01 19:20

〈센코노믹스〉
〈센코노믹스〉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센코노믹스〉
아마르티아 센 지음·원용찬 옮김/갈라파고스·9800원

현 정권이 내세웠던 ‘747 전략’은 한낱 신기루였음이 확실해 보인다. 물가는 치솟고 서민들의 고통은 더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은 부자의 세금은 줄이고 가난한 이들의 부담은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수출기업의 이익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고집한 것과 유사하다. 익히 알고 있지만,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외환위기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미증유의 사건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모양이다.

아마르티아 센을 주목하는 것은, 그가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타서라기보다, 지속적으로 불평등과 빈곤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데 있다. 이번에 나온 <센코노믹스>는 그가 여러 곳에서 강연한 내용을 묶었는데, ‘인간의 안전보장’이 핵심어로 나온다. 이 단어의 뜻을 가장 적절하게 정의한 이는 오부치 게이조 일본 전 총리. “인간의 생존, 일상생활,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위협을 포괄적으로 제거하고 이 위협에 맞서는 노력에 지원을 강화한다는 사고방식”이라 했다.

그동안 우리는 국가안전이라는 말은 숱하게 들어왔어도, 인간안전이라는 말은 해 오지 않았다. 낱낱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결과적으로 국가안전도 보장되는 셈인데, 그 역만 가능하다 여겼으니,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센에게 이 개념이 중요하게 떠오른 것은 아시아에 몰아닥친 외환위기를 분석한 끝이다. 그는 경제위기라는 해일이 지나간 자리에서 새로운 ‘열쇳말’이라는 진주를 캐 올린 것이다.

센은 수십년 동안 국민총생산이 매년 5~10% 상승하다 1년 사이 그만큼 떨어졌을 뿐인데, 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의 상황이 갑자기 비참해진 이유를 알 수 없었노라고 토로한다. 국민총생산 같은 통계만 보면 파국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눈을 다른 데로 돌리면 답이 나온다. 성장후퇴의 충격이 구성원 전체에 퍼지지 않고 가장 빈곤한 계층에 집중되었다. “악마는 제일 뒤처진 꼴찌부터 잡아먹는 식으로 사회에서 가장 최하층의 사람들부터 희생”시켰던 것이다.

아시아의 위기는 성공한 경제라도 돌발적이고 심각한 문제로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리고 그 고통은 골고루 분담되지 않았고 일부는 심각한 고통에 빠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얻는 가장 큰 교훈은 마땅히 “인간의 안전보장이 발전을 위한 중심과제”임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 중요한 운명의 시간에 밀어닥치는 위험을 막는 데 꼭 필요한 보호책”이 마련되지 않은 발전이나 성장은 한낱 공염불일 뿐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와 인간의 안전보장에는 근본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센은 그 사례로 민주적인 독립국가에서 대기근이 일어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든다.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도 우리는 인간의 안전보장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새로운 위기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 뻔한데,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미미했다. 이제 남아있는 희망은 시민들의 정치의식이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총동원해 인간의 안전보장을 등한히 하는 정치세력을 압박할 때 상황이 개선된다고 센은 말했다. 정치라면 넌더리나겠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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