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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디지털이 창출한 새로운 리얼리즘 미학

등록 2009-02-20 21:13

베스트셀러 읽기 /

〈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 지음/씨네21북스·1만3000원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책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1·2> <폭력과 상스러움> <호모 코레아니쿠스> 등으로 이어지는 시사적 갈래와 <미학 오디세이> <현대 미학강의> <놀이와 예술 상상력> 등으로 이어지는 미학적 갈래로 나뉜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진중권의 이매진>은 후자에 속한다. 지은이는 책 머리에 글이 영화 비평이 아님을 강조하고, 이론적 흥미와 우연이라는 잣대로 고른 영화를 담론의 도구로 삼아 ‘디지털 기술이 영화의 내용과 형식에 준 변화’, ‘과학과 인문학 담론의 영화적 상상력으로의 변용’이라는 책의 주제에 맞춰 ‘담론의 놀이’를 펼쳤음을 밝힌다.

지은이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스크린에 비치는 이미지, 내러티브 구성, 제재와 소재, 제작 방식과 수용 모델, 나아가 해석과 비평의 준거까지 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미디어 학자 레프 마노비치의 말을 인용해 영화의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의 구별이 흐릿해지면서 “우리 현실을 열등하게 재현한 것이 아니라 다른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 곧 ‘복제에서 생성으로’ 새로운 리얼리즘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사실보다 더 실감나는 이미지로 관객을 도취시키는 영화 <300>, 실사에 가까운 묘사를 애니메이션에 담아내는 모순적 결합으로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슈렉>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전통적인 선형적 서사 대신 대안적 서사가 나타나 ‘서사의 파괴’가 진행되기도 한다. <나비효과>는 디지털 시대에 대중의 일상이 된 하이퍼링크를 형식화해 여섯 개의 플롯을 영화에 나란히 담는다. 영화를 보며 하나의 최종적 의미를 향해 달려가는 단선적 해석도 불가능해진다. 상징, 지표, 도상을 통한 모든 추적이 실패로 돌아가 사건이 영원히 미궁에 빠져드는 <조디악> 같은 영화가 나오는 것이다.

영화가 현대인의 지각을 ‘시각적인 것에서 촉각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발터 베냐민의 말을 끌어오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같은 영화의 비평은 새로운 관점에서 시도될 수 있다. 영화를 현실의 재현이나 텍스트의 시각적 번역이 아닌 신체에 ‘자극’을 가하는 지표로 본다면, 영화 비평의 기준은 자극의 ‘강도’가 된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사에 일찍이 없었던 ‘폭력의 현상학’을 구현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영화 매체의 촉각성으로 상처를 주어 역사를 트라우마로 기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높은 성취를 이룬 영화가 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또한 “관객의 신체에 충격을 주어 예수의 고통을 전하고, 관객의 영혼에 상처를 주어 성흔을 남기”면서 영화 매체의 촉각성을 종교적 메시지의 전달에 효과적으로 사용한 영화다.

지은이가 <씨네21>에 1년 동안 연재한 글을 묶어낸 책에는 총 37편의 영화가 분석의 도마 위에 오른다. 출간 뒤 주요 서점 인문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지금까지 1만부가 팔렸다. 책을 편집한 씨네21북스 김희선씨는 “지은이가 예전에는 시사문제나 미학에 관심이 있는 비교적 소수의 독자에게만 알려졌다가 <디워> 논쟁, 촛불정국을 거쳐 대중적으로 더 널리 알려지면서 새로운 독자층이 생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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