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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참된 것을 위한 거짓의 의미는

등록 2009-07-10 19:41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마더 나이트〉
커트 보네거트 지음·김한영 옮김/문학동네·1만2000원

그 책을 굳이 읽은 이유는 모르겠다. 단지, 다 읽고 나서 한동안 깊은 사색에 빠진 기억만은 생생하다. 헌책방에 쌓여 있는 문학전집 가운데 그 작품이 유독 눈에 띄었다. 작가 이름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손이 갔고 한동안 답답한 감동에 휩싸여 있었다.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리라. 뛰어난 문학적 성과를 접한지라 감동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나 작가가 던진 문제의식에 깊이 빠져 답답하기만 했던 심정을. 커트 보네거트가 쓴 <태초의 밤>이라는 작품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릴 적 부모를 따라 독일에 갔다. 거기서 독일어로 빼어난 희극을 쓰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성공의 걸음나비보다 운명의 그것이 더 넓었다. 전쟁의 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을 적, 미국 정보부에 포섭돼 스파이 노릇을 하기로 했다. 정보통은 한 사람의 내면도 정확히 읽어내는 모양이다. 그의 숨겨진 어릿광대 기질을 자극했던 것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장르의 특징을 잘 활용한다. 회고록 형식이라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거기다 스파이 소설의 문법도 잘 버무려 놓았다. 어렵게 읽을 작품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한다. 주인공 하워드 W. 캠벨 2세는 영어권 세계에 나치를 선전하는 일을 맡았다. 나치와 극우주의자, 그리고 인종주의자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연합국의 양심 있는 시민과 유대인들에게는 저주의 대상이었다. 그가 한 일은 어이없었다. 선전물을 읽는 동안 “말버릇, 말 사이의 중단, 강조, 기침, 중요한 문장에서의 말실수”로 정보를 흘리는 것이었다.

새삼 말할 필요 없이 그는 “대역죄, 반인류적 범죄, 양심을 저버린 죄”를 저지르면서 보잘것없는 공헌을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물어보아야 한다. 그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현실은 이 문제를 서둘러 덮어버렸다. 그도 목숨을 부지한 것 외에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극적으로 펼쳐지면서 세인의 주목을 받았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읽는 내내 작가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참된 것을 위해서는 거짓된 짓을 해도 될까. 달리 말하면, 거짓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지렛대로 삼아 참된 것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일까.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작가는 이 질문에 “현대인이 널리 향유하는 아주 단순한 혜택, 정신분열증 덕분”이라는 잠언으로 답변한다. 참으로 오랫동안 곱씹어보며 생각해볼 만한 말이다.


이 작품이 한 사람의 아이러니한 운명을 통해 진실과 거짓의 혼재를 말하고자 했다 해석해도 될성싶다. ‘태초의 밤’이라는 제목이 혼동과 혼재를 뜻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이해하기에는 이 작품이 읽는 이에게 주는 충격이 너무 세다. 질문을 다시 해보자.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더 크고 가치 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지금 이곳에서 저지르는 온갖 타협과 악행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역사라는 큰 이야기를 겨냥해 이 이야기를 꾸며냈겠지만, 이 작품을 거울삼아 삶을 비추어 보면 가려져 있던 나의 분열증을 목격하게 된다.

<태초의 밤>이 <마더 나이트>로 다시 나왔다. 제목에 불만이 많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보다는 커트 보네거트가 읽는 이를 몰아붙이는 또다른 작품이 있다는 정보를 밝히는 것이 나을 성싶다. <제5도살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안양대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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