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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9월 12일 잠깐독서

등록 2009-09-11 18:58

〈씩씩한 남자 만들기〉
〈씩씩한 남자 만들기〉
조선팔도 ‘진짜 사나이’ 역사적 고찰

〈씩씩한 남자 만들기〉

평민이던 백범 김구의 아버지는 거의 매달 ‘부정하고 오만한’ 이웃 양반들을 반쯤 죽을 만큼 주먹으로 두들겨팼다고 한다. 위압감을 느낀 일부 양반들은 아버지에게 말을 걸 때 양반들끼리만 쓰게 돼 있는 경어체를 쓸 정도였다. 이와 동시에 아버지는 정기적인 선물로 향리들의 비위를 잘 맞출 만큼 명민한 사람이었고, 그 덕분에 자신의 주먹질에 대한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태형을 선고받더라도 집행인들은 때리는 시늉만 했고, 아버지는 고통을 가장하기만 하면 됐다. 그런 백범의 아버지는 황해도 평민들 사이에서 영웅이었고, 이상적인 ‘남자’였다.

박노자 교수는 이 책에서 수많은 남자들을 불러내 전근대와 근대의 이상적 남성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는지 분석한다. 그는 지배층 안에서뿐만 아니라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 피지배층 내부에서 어떤 남자가 진짜 남자로 인정받았는지, 지역마다 남자의 조건이 어떻게 달랐는지,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식민지라는 조선의 위치가 남자 담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정교하게 살핀다.

마침 한 공중파 방송에서 ‘남자의 조건’이라는 제목의 오락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남자’가 아닌 ‘아저씨’가 되어가는 30~50대 남성 연예인들이 춤 배우기, 자전거 여행, 집수리 등 매주 다른 과제를 수행하며 남성성을 되찾는 내용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남자의 조건’이 언제부터, 어디에서 온 것인지 박노자 교수와 함께 방송을 보며 이야기를 듣고 싶다. /푸른역사·1만2900원.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적색공포’ 미국, 두 청년을 죽이다

〈사코와 반제티〉

〈사코와 반제티〉
〈사코와 반제티〉
사람이 죽었다. 갓 스물에 아메리칸드림을 타고 대서양을 건넌 이탈리아 청년 둘. 생선 팔고 신발 만들었다. 휴일엔 아나키스트 모임에 나가고 신문에 글도 썼다. 그러다 무장강도 살인범으로 몰렸다. 왜? 때는 1차 세계대전 뒤 향락과 공포의 시절. 향락은 재즈요 공포는 빨갱이였다. 러시아가 소련이 되자 공산주의와 아나키즘, 노동운동은 미국에서 ‘적색 공포’로 둔갑한다. 그것은 미친 핏빛 바람이었다. 두 청년은 신발공장에서 선량한 노동자 둘을 살해하고 급여를 빼앗았다는 혐의로 1920년 9월 기소됐다. 증인의 진술은 모호했고, 검사는 유도신문을 했으며, 재판장은 ‘아나키스트 놈들’이라 주워섬긴 뒤 배심원들에게 애국심 운운했다. 결론은 사형 선고. 항소심과 재심 청구 과정에서 증언과 증거가 잇따라 증명력을 잃었으며, 아인슈타인·러셀 등이 항의와 탄원을 거듭했으나, 7년 뒤 그들은 끝내 전기의자에 앉았다. 살인범으로 기소됐지만 그들은 사상범으로 죽었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날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니콜라 사코와 바르톨로메오 반제티. 그 뒤 두 청년은 영화·연극·그림·노래·소설·오페라·시·조각으로 되살아났다. <사코와 반제티>의 지은이는 두 청년을 복숭아씨처럼 이야기 속에 박은 뒤, 벌레 먹은 열매살 같은 당대 미국을 실증한다. 민주주의는 소문이 아니라 현실이어야 하며, 양심은 열정과 같은자리말이라는 것을 전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들과 그것을 알게 된다. ‘용산’에서 사람이 죽었다. 우리는 그들을 아는가. 죽음은 빠르고 양심은 더딘가. 브루스 왓슨 지음·이수영 옮김/삼천리·2만6000원.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100년전 외교관’ 김윤식의 가르침

〈유교적 사유와 근대 국제정치의 상상력〉

〈유교적 사유와 근대 국제정치의 상상력〉
〈유교적 사유와 근대 국제정치의 상상력〉
19세기 말 조선에서 ‘전통’은 근대화의 근본적 질곡이었나? 식민지근대화론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심지어 뉴라이트들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을 근대화시켰고,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을 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조선 말 대표적 유교지식인이자 ‘동도서기파’라고 할 수 있는 운양 김윤식의 정치사상 연구를 통해, ‘조선의 전통=반근대’라는 통념에 반론을 제기했다. 김윤식은 비록 ‘민’(民)을 정치의 주체로 인식하진 않았지만, 전통의 논리를 동원해 근대 국제정치는 물론 의회입헌론까지 수용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위정척사론조차도 ‘근대와 불상용의 관계’는 아니었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그리고 단언한다. “(19세기 말 조선의) 근대국가로의 길을 막은 것은 결코 전통이 아니었다. 근대모델을 추구했던 개화당이 실패해서도 아니다. 제국주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와 정치 엘리트의 분열 때문이었다.” 청당, 일본당, 러시아당으로 패거리를 지어 나라의 ‘안’이 아니라 나라의 ‘밖’에서 정치적 지지를 얻는 데 열중했던 당시 정치 엘리트들의 자기부정적 분열을 문제삼았다. 지은이는 (망국에 이르게 한) 19세기 말 조선의 외교적 고립은 강자에 편승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외교의 ‘균형과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균형과 신뢰. 지은이가 한 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문명사적 전환기인 21세기 초 한국 외교에 절실하다고 제기한 ‘역사적 상상력’의 고갱이다. 미국과 중국을 대하는 한국 외교의 비전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 김성배 지음/창비·2만4000원.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주방은 끓고 국자는 날아오고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벌써 여러 권의 책에서 요리만큼이나 맛깔나는 글솜씨를 선보여온 박찬일 요리사가 이탈리아 요리 유학 시절과 음식 철학을 담은 산문집을 냈다. 하지만 유학파 출신이 아니면 요리사 명함도 못 내민다는 가로수길이나 청담동 레스토랑처럼 우아하게 폼 잡는 글을 기대했다면 번지수가 틀렸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에 실린 31편의 산문에는 전쟁터처럼 치열한 주방의 끓어오르는 열기와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요리사의 고집, 우리가 몰랐던 이탈리아의 요리와 문화에 대한 상식이 경쾌하고 시원시원한 말투로 펼쳐져 있다.

“(잘못했을 때) 뒤통수를 국자로 때리거나 등판을 솥뚜껑 같은 손으로 후려치는 정도야 양반”일 정도로 혹독하며 정신없이 바쁜 주방 현장의 생생한 중계는 세련된 상차림이 아니라 진땀 나는 노동의 결과물로서의 음식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반면 “진짜 요리사가 되려면 시장과 들판을 알아야 해. (…) 좋은 재료는 요리의 전부야”라고 그가 전하는 주방장 주세페의 요리 철학에서는 슬로푸드나 로컬푸드 운동 등 최근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먹거리 이슈와 음식 문화에 대한 지은이의 날카로운 견해를 엿볼 수 있다.

3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1년간 그가 일했던 시칠리아 식당의 주인이기도 한 주세페는 이 책에서 마치 주인공처럼 자주 등장한다. 불평하는 손님에게 “내 요리가 맘에 안 들면 오지 말란 말이야”라고 서슴지 않고 소리치는, 까다롭고 고집스러운 그의 모습은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다. <한겨레> ‘esc’에 1년 반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것으로 소설가 김중혁씨가 재치 있는 일러스트로 재미를 보탰다. /창비·1만3000원.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외면할 수 없는 ‘세속적 조언’

〈학교가 알려주지 않는 세상의 진실〉

〈학교가 알려주지 않는 세상의 진실〉
〈학교가 알려주지 않는 세상의 진실〉
“학교는 승자와 패자를 뚜렷이 가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회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걸 명심하라.”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니 그런 현실을 불평하지 말라.” “학교 선생님과 달리 직장 상사는 용서가 없다.”

빌 게이츠가 미국 마운틴휘트니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던진 충고의 말들은 냉정한 세상살이의 다른 표현이다. 진짜 살아야 할 세상은 학교와는 너무도 다르다. <학교가 알려주지 않는 세상의 진실>은 거친 세상의 치열한 경쟁에 첫발을 들여놓을 젊은이들에게 선배가 들려주는 인생 메시지다.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은 세상의 이면을 들춰낸 투박하지만 실천적인 노하우이기도 하다. “남의 험담이나 가십을 즐기지 말라”, “사람을 알고 싶다면 문학·사학·철학(문사철)을 읽어라”와 같은 커뮤니케이션론은 한낱 성공을 위한 수단쯤으로 치부될 수 없다. 간혹 세속적으로 비춰지는 씁쓸한 조언에도 쉽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건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는 탓이다.

그렇다고 학교가 알려준 진실과 도덕이 세상에서 종말을 고했다고 단언할 순 없다. 교과서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법론도 다양하다. 이 책이 그런 차이를 끌어안고 있는 건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세상의 다른 단면’을 미리 알고 싶은 젊은이나 학교를 떠나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예비 직장인들에겐 저자의 조언이 간접경험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민성원·이계안 지음/위즈덤하우스·1만2000원.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티베트 열세고개 ‘원초적 진실’

〈소년은 자란다〉

〈소년은 자란다〉
〈소년은 자란다〉
짧은 침이 더 아픈가? 뽑고 나서도 한동안 저릿하더니…. 책에 실린 단편소설 열세 편이 꼭 그 짝이다. 길이는 짧아도 울림은 묵지근하다. 문화혁명 즈음 어린 시절을 보낸 지은이에게 중국의 농촌은 아픈 기억이다. 티베트 소수민족 출신이기에 소설의 주인공도 티베트의 고통이다. 그는 줄곧 현실을 되새긴다. 사람이 사람에게 왜 이렇게 고통을 주어야 하는지…. 기계문명에 밀려나 산속에 숨어들어 최후를 맞이하는 마부, 고사리 따서 팔아 가족을 부양하다 스스로 돈에 팔려가는 소녀, 따돌림 당하는 열두 살 사생아와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이 눈에 밟힌다. 소설은 한편으로 치유를 향한다. 목동 할아버지의 품속엔 양털 묻은 사탕 한 알뿐이지만, 손자에게 내미는 손길은 달콤하다. 버르장머리없는 고향 젊은이, 그와 실랑이 벌이던 야간경비원은 홰나무꽃 버무린 찐빵을 나누며 향수를 달랜다.

티베트 하면 대개 명상과 종교적 가르침으로 충만한 샹그릴라를 떠올린다. 하지만 소설 속 티베트는 초연한 척하지 않는다. 척박한 땅 위에 정치·경제적 격변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티베트가 왜곡된 모습으로 읽히는 게 두렵다’고 했다. 중국에서 잘 알려진 마오둔 문학상 수상 작가 아라이. 벌써 20여 나라에서 작품이 번역됐다니 눈여겨볼 이름이다. 중국문학 번역가 김태성은 “우화에 가까운 길지 않은 단편에 삶의 원초적 진실을 담아냄으로써 중국 당대문학의 또다른 지평을 열고 있다”고 평했다. 전수정·양춘희 옮김/아우라·1만원. 최정봉 기자 bong2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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