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자 박서련 작가. 박서련 작가는 1930년대 평양 을밀대 지붕 고공농성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삶을 그린 소설 <주룡>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연락을 받고는 깜짝 놀랐어요. 지금도 이게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예요. 그런데 몰카라면 너무 정교하다 싶긴 해요. 하하.”
장편소설 <주룡>으로 3천만원 고료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 박서련은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심사 다음 날인 1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그를 만났다.
<주룡>은 1931년 평양 평원고무공장 파업을 주동하던 중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벌였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강주룡은 ‘을밀대의 체공녀’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잡지 <동광>에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다. 소설 <주룡>은 이 인터뷰를 비롯해 강주룡의 삶에 관해 알려진 최소한의 사실에 살을 붙여 그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재탄생시켰다.
“2015년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지만 청탁은 거의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중장비 자격증이라도 따볼까 해서 그 동네 사정을 기웃거릴 때였어요. 누군가 일제 강점기에 여성 고공 노동자가 있었다는 말을 해주더군요.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고는 전율이 일었어요. 어떻게 이런 인물이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박서련은 “일하는 여성 영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강주룡을 소설화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밝혔다. 그는 “<동광> 인터뷰를 읽다 보니, 강주룡의 욕망이 매우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굳어져온 것이 아닌 다른 가치 체계를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대적이고, 그런 자신의 대단함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위대함을 지닌 인물이 강주룡”이라며 “그래서 더더욱 지금 시점에서 호출해야 할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심사위원들은 <주룡>의 작가가 등단한 지 오래이고 책도 여러권 낸 이일 것으로 짐작했다. 심지어는 탈북한 새터민이 북쪽 작가의 원고를 몰래 지니고 와서 응모한 게 아닌가 하는 농담 섞인 추측까지 나왔다. 그만큼 소설이 능란했고, 특히 주룡을 비롯한 인물들이 구사하는 당대 이북 사투리가 그럴싸했다. 이런 식이다.
1930년대 평양 을밀대 지붕 고공농성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삶을 그린 소설 <주룡>으로 제23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박서련. “이북 사투리가 많이 나오는 소설을 몰입해 쓰다 보니 실제 현실에서 서울말이 잘 안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러면 내 어드렇게 하랴? 꿈에 그리던 독립군인데. 내 난리 피워 부대에서 쫓겨나면 임자 속이 후련했갔니? 게서 분개하여 기딴 소리 하는 이에게 총이라두 쏘아야 했갔어?”
당선자는 정작 “사투리 구사를 위해 그다지 연구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강원도 철원 출신으로 그곳에서 고교까지 졸업한 이력이 이북 사투리 구사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는 “철원에서는 오히려 경기 말을 쓴다”며 “(황해도 장연 출신 일제 강점기 작가)강경애의 산문을 읽고 필사하며 사투리를 익혔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백석 시집을 자주 읽었다. 신앙이 흔들릴 때 성경을 읽는 느낌으로”라고 설명했다.
박서련은 고교 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해 대학에 문예특기생으로 입학했으나 졸업을 하지는 않았다. 고교 때부터 한강과 김애란의 소설을 좋아했고, 페터 회의 소설 <에라스무스, 사랑에 빠지다>와 에리히 케스트너의 소설을 인상 깊게 읽었다고 밝혔다. 2015년 단편 ‘미키마우스 클럽’으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았으나, 청탁이 거의 없어서 지금까지 발표한 단편이 등단작을 포함해 셋뿐이라고 했다. 장편을 쓰기는 <주룡>이 처음이었다고.
“첫 장편이어서 끝까지 쓸 수 있을지 두려웠고 힘도 들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인물 강주룡을 망쳐 놓는 게 아닌가 싶었지요. 적어도 장편 하나는 쓰고 더 경험을 쌓은 뒤에 이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 게 아닐까 후회도 했습니다. 그래도 소설을 완성해서 응모한 직후에는 벅찬 마음으로 수상소감을 미리 써보기도 했어요. ‘난 <주룡>을 쓴 사람으로 기억될 거야. 이렇게 <주룡>을 보여줄 수 있게 돼서 기뻐’ 하는 심정이었지요. 이제는 당선이 됐으니까 ‘<주룡>을 쓴 사람’을 넘어서는 작가가 되어야겠죠? 어쨌든, 청탁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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