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4월 시미즈 동고교 입학 때 어머니(고코)와 함께 찍었다.
재일 조선인 작가 김달수, 북한영화 관람, 일본 시인의 ‘조선’이라는 시 감상…
고교 1년을 마칠 무렵, 조선을 ‘탐식’ 했다. 한-일 갈라놓은 역사의 심각성을 다시금 새겼다.
고교 1년을 마칠 무렵, 조선을 ‘탐식’ 했다. 한-일 갈라놓은 역사의 심각성을 다시금 새겼다.
와다 하루키 회고록-내가 만난 한반도/④ ‘조선’을 읽다
고교 1년이 끝난 1954년 2월부터 3월에 걸쳐 조선에 대한 내 이해수준이 달라졌다. 풍부해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선 나는 재일 조선인 좌익작가 김달수가 써서 호평받은 소설 <현해탄>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식민지가 돼 창씨개명을 강요당하고 모국어 사용도 금지된 상황에서 ‘황국신민 서사’를 강제당한 조선민족의 비극과, 강요하고 억압하며 착취한 일본제국주의의 죄악, 무도함. 식민지조선은 두 가지 타잎의 인간을 낳았다.
그 하나는 윤종개로 대표되는 식민지적 인간(루쉰의 드레이). …다른 하나는 조선민족의 혁명전통을 이어받아 엄혹한 탄압속에서 독립과 자유의 새 조선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사람들. …그들의 ‘민족정신과 조직은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다.’ 이 식민지조선을 그린 장편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조선민족의 혁명 에너지다. 항상 역사의 지표 아래서 아무리 억압당하고, 아무리 탄압받고, 아무리 짓밟혀도 길가의 잡초처럼 죽어 없어지지 않는 조선민족의 혁명 에너지.”
소설 주인공은 서울 명문가 출신 백성오와 일본에 유학해 일본여성과 연애하고 헤어진 뒤 서울의 신문사에 취직한 서경태 두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태평양전쟁 개시 전야의 서울에서 민족의식에 눈떠 각기 새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성오가 자민족에 대한 자신을 되찾아가는 기분을 김달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성오는 지금까지 자신을 포함한 자기 민족, 조선인을 경멸해왔다. …그러나 그것을 되짚어보면서 …그는 ‘음, 음’하며 진땀나는 긴장속에 자신들 조선인·민족이라는 걸 전혀 새롭게 보게 됐다. …그 되짚어본 체계 위에서 보니 현재 김일성의 조국광복회, 또는 조선독립동맹의 무장항쟁은 분명히 그 역사적 필연에 따라 흘러왔다는 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때 나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았다. 그러나 김일성이 무엇을 한 인물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외에 주목해야 할 또 한사람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불결한 차림새로 술집에 나타나 ‘황국신민 서사’를 욀 수 없는 조선인에게 그것을 가르쳐주는 걸 업으로 삼고 있는 노인 조광서다. 그는 백성오가 갇혀 있던 감옥에 들어가 밤늦도록 주인공에게 귓속말로 조직 탄압상황, 결혼한 딸 소식을 들려주고 아침이 되면 다시 원래의 ‘황국신민’으로 되돌아가 석방된다. 이런 시정의 무명 저항자의 모습을 김달수는 나중에도 즐겨 그렸다. 그 원형이 여기에 있다.
김달수는 조선총련에 속해 그 뒤에도 좌익적인 작품을 썼으나 60년대 말이 되면 조직을 떠나 일본속의 조선문화를 발굴하는 일에 몰두해 일본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74년에는 한국 시인 김지하의 구명운동에 참가했으며, 잡지 <계간 삼천리>의 동인이 된다. 거기서 나는 <현해탄>의 저자를 알게 됐다. 그는 술에 취하면 <신라의 달밤>을 고운 목청으로 불렀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현해탄>을 읽은 직후 나는 마을 공회당에서 북한 영화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을 보았다. 재일조선인단체와 시즈오카 좌익 영화서클협의회가 상영회를 주최했다. 누군가가 표를 사달라고 했던지 나는 2장을 사서 어머니와 함께 보러 갔다.
“필름은 기대 이상으로 탄탄한 수작으로, 그 정도로 훌륭한 영화가 ‘융단폭격’ 사이를 비집고 만들어졌다는 건 경이”라고 나는 일기에 썼다. 나는 조선전쟁(한국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미군에 저항해서 자신의 ‘향토’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비친 북한 파르티잔(빨치산) 모습에 매료돼버렸던 것이다.
“다 보고 나서도, 또 보고 있는 중에도 <현해탄>과 비교해 보면서 조선인의 혁명 에너지라는 걸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는 마을 여성동맹위원장 순덕을 연기한 유경애의 연기가 단연 빛났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는 일반적이지 않다. 이 영화에 감동하려면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어야 할 것 같다.” 한편 함께 간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적확한 비평을 했다. “공산주의국에서 만든 것이니까 다분히 미국에 악역을 맡기고 있다. 나는 한 발 물러서서 봤다.”
다음 달 나는 오노 도자부로(小野十三郞)의 <현대시 수첩>을 사서 조선에 대해 쓴 인상적인 시를 읽었다. 오노는 아나키스트계 시인이었으나 전후에는 레지스탕스 시에도 관심을 쏟았으며, 공산당에 가까왔다. 이 책 속에서 오노는 “지금 일본인으로서 어떤 의미에서든 조선에서 일어난 전쟁에 관심을 갖지 않은 자는 없을 것이다”라면서 시인 마루야마 가오루(丸山薰)가 1937년에 쓴 <조선>이라는 시를 소개했다.
“언제부터인지 공주는 달리고 있었다. 공주 뒤를 괴물이 필사적으로 쫓아왔다. 그녀는 쫓기면서 머리에 꽂은 빗을 빼서 내던졌다. 빗은 괴물 앞에 우뚝 솟아 삼각산이 됐다.(략)
공주는 허리에 차고 있던 염낭(주머니)을 던졌다. 염낭은 연꽃이 흐드러지게 핀 연못으로 변했다. 괴물은 (략) 진흙에 발이 빠져 안간힘을 쓰며 건너기 시작했다.(략)
하지만 어렵지 않게 괴물은 바짝 뒤쫓아왔다. 공주는 이번엔 한쪽 신발을 벗어 던졌다. 예쁜 신발은 괴물 코를 때리고는 땅에 떨어져 벼랑으로 변했다.(략)
집요하게도 괴물이 또 바짝 따라붙으려 하고 있었다. 공주는 윗옷의 푸른 끈을 뜯어 던졌다. 그것은 꾸불꾸불한 강이 됐다.(략)
이야기 도중에 어른이 소리쳐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韓)씨는 긴 담뱃대를 입에서 떼고는 허둥지둥 헛간을 나갔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지났다. 과연, 어린 내 기억이 더듬는 그 나라 풍경에는 가련한 공주가 울면서 내던졌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략)
또 오늘도 국토 어딘가를 숙명의 공주는 달리고 있었다.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내던져버린 벌거벗다시피한 모습으로 고함치며 달리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괴물은 여전히 참혹한 발톱을 세워 그녀의 뒷덜미를 움켜쥐려 하고 있었다.
어느 해 가장 불행한 순간에 공주는 마지막 부분을 가린 얇은 천을 내던지고 슬픔에 몸을 엎드렸다. 천은 팔랑팔랑 바람에 펄럭이며 때마침 가까이 있던 강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물로 변했다. 강언덕을 넘쳐 둑을 무너뜨리며 무서운 기세로 홍수가 돼 들판을 뒤덮었다.(략) 무수한 마을이 물 위에 떠다니며 초가지붕 위에서 흔드는 이 세상에 대한 결별의 손을 가득 싣고 천천히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바다를 향해 떠내려 갔다.”
조선은 저항한 보람도 없이 일본에 뒤쫓겨 정복당하고 만다. 그러나 조선인의 분노는 무서운 홍수가 되어 모든 것을 남김없이 쓸어가버리는 것이다. 이 시는 지배자 일본과 피지배자 조선의 관계를 선열하게 묘사했다.
마루야마 가오루라는 보통의 시인이 왜 그런 시를 썼을까. 그 까닭을 내가 알게 된 것은 26년 뒤인 1980년의 일이다. 한국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석정남의 수기를 번역할 때 그 에피그램에 마루야마의 시 <어머니의 우산>이 인용된 것을 보고 다시 이 시를 기억해냈다.
그리고 마루야마에 대해 조사해본 결과 그의 아버지는 일본 보호국 조선에 파견된 경찰고문 마루야마 시게토시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마루야마 가오루는 조선이라는 공주를 뒤쫓아가는 ‘괴물’의 아들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각하고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전쟁중에 마루야마도 다른 시인들처럼 전쟁을 찬미하는 시를 어린이 대상으로 썼다. <어머니의 우산>은 전쟁 말기에 소개해 간 야마가타현 산촌에서 숨진 어머니에게 바친 시였다. 석정남은 마루야마의 시에 고향 마을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여성노동자의 마음을 겹쳐 놓았다. 그녀가 마루야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면 놀랐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다시한번 일본과 한국을 갈라놓은 역사와 현재의 심각성을 되새겼다. 나는 그것을 <마루야마 가오루의 조선>(<한국민중을 주목할 것> 소주샤(創樹社), 1981년 수록)이라는 글에 담았다.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외에 주목해야 할 또 한사람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불결한 차림새로 술집에 나타나 ‘황국신민 서사’를 욀 수 없는 조선인에게 그것을 가르쳐주는 걸 업으로 삼고 있는 노인 조광서다. 그는 백성오가 갇혀 있던 감옥에 들어가 밤늦도록 주인공에게 귓속말로 조직 탄압상황, 결혼한 딸 소식을 들려주고 아침이 되면 다시 원래의 ‘황국신민’으로 되돌아가 석방된다. 이런 시정의 무명 저항자의 모습을 김달수는 나중에도 즐겨 그렸다. 그 원형이 여기에 있다.
재일 조선인 좌익작가 김달수가 써서 호평받은 소설 <현해탄>.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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