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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평화 빼앗긴 슬픈 대자연

등록 2006-08-31 19:06수정 2006-08-31 19:17

비무장지대는 ‘사기’다
무장지대를 허물어 평화공원으로
남기는 일을 후세에게 넘길건가
한겨레원형질 민족문화상징 100

(6) 비무장지대

1953년 7월 27일 월요일, 국제연합(UN)군 사령부를 대표한 윌리엄 해리슨 중장과 북한을 대표한 남일 조선인민군 대장이 서류에 서명했을 때, 비무장지대는 탄생의 고고성을 알린다. 출산을 알리는 왼새끼 금줄 대신 철책선이 쳐졌고 그 아기는 쉰살을 넘겨 차츰 노년기로 접어들었다.

비무장지대는 ‘사기’다. 왠 비무장? 비무장은 ‘결코’ 없다. 중화기도 부족하여 각종 화공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후방에는 미사일이 곳곳에서 노린다. 섬처럼 진출한 전방 지피(GP)는 서로의 복부를 겨냥하며 적막 속에 으르렁거린다. 반공드라마의 은밀한 침투 간첩조 이야기가 <공동경비구역>같은 영화로 진화를 거듭한 것은 사실이나 지뢰밭 현실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 엄혹한 무장지대를 여전히 비무장지대라 부르고 싶어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가는 찻길과 철길이 뚫려서 숨통이 트이기는 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FTA협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은 민족내부거래가 아니라 여전히 ‘외국제품’이어야 한단다. 비무장지대는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표현을 빌린다면 ‘성과 속’이 교차하는 제의의 장소라고나 할까. 엄청난 전쟁과 죽음 그리고 침묵의 제의, 양면적인 그 무엇이 함께 155마일을 흐른다.

지금의 외형적 침묵이 민족통일의 축제로 승화될지, 또 다른 죽음의 제의로 폭발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세계 역사상 전쟁은 늘 있어왔지만 같은 민족 간에 이처럼 공고한 격리공간이 존재해온 적은 없었다. 그래서 비무장지대는 ‘세계사적 성역’이기도 하다. 성역은 평화롭게 보존되어야한다. 전쟁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으며, 냉전 유물이기는 하지만 성역답게 제대로 보존되고 후세를 위해 살아있는 평화박물관으로 이어져야한다.

‘잃어버린 땅’을 찾겠다며 비무장지대 안의 토지문서를 사고 파는 자본주의적 발상이 이미 본격화하고 있다. 여기에 지자체마다 평화를 내걸고 야금야금 냉전의 유물 조차 돈으로 환산하는 지경에서 비무장지대가 끝내 100대 민족문화상징으로 선정되었다. 비무장지대가 민족문화상징의 반열에 올랐음은 슬픈 일이다. 동족상쟁의 잔혹한 과거의 이미지까지 모두 함께 올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많은 청년들이 선택과 대안없는 징병제로 청춘을 불사르는 답답한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선의 들판과 계곡은 엄연한 대자연이다. 이른바 ‘사계청소’로 뭉개지고 제초제로 오염되었어도 어김없이 철새들이 찾아들고 고라니들은 새끼를 낳는다. 자연의 순리다. 궁예가 미륵신앙에 의탁한 ‘천년의 꿈’은 사라졌어도 철책선 안의 무너진 철원 도성에서도 꽃은 피고진다. 이고 지는 역사의 법칙은 도도한 법이다. ‘무장지대’를 허물어내어 하루 빨리 민족문화 100대상징 등등의 목록에서 탈락시키는 일, 그리고 진정한 ‘비무장지대’만 역사공원으로 남기는 일, 후세들에게까지 그 일을 짐지우게 할 것인가!


주강현·한국민속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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