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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한국에 대한 일본의 범죄, 미국은 최대의 공범이었다

등록 2007-06-08 19:13

한승동의 동서횡단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이승만 정권은 미국이 그해 3월 제시한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조약 초안 중 한국에 불리한 내용의 수정을 요구하는 다섯 가지 항목을 그해 7월 미국에 제출했다. 얼마 전에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의 김영미 전임연구원이 대중용 일본연구 전문잡지를 표방한 〈일본공간〉 창간호(5월10일 발행)에 실은 논문 ‘유진오의 일본출장 보고서와 협상준비’에서 정리한 5개 항목은 다음과 같다. “1.한국의 대일강화조약 참가 요망 2.일본의 한국내 일본재산 완전 포기 3.일본 어선의 맥아더라인 바깥 진출 제한 4.독도·파랑도의 한국 영유 확인 5. 재일 조선인 문제 해결 촉구.”

이 가운데 미국이 들어준 것은 고작 2번 항목 정도였다. 한국은 미국이 작성한 초안에는 연합국 일원으로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반발하자 미국은 빼버렸다. 독도·파랑도도 일본 요구로 한국 영토에서 빠졌다. ‘독도문제’ 출발점이다. 재일, 재사할린 동포 등 숱한 재외동포들에 대한 전후 일본의 범죄적 행위에도 미국은 중대한 책임이 있다.

대신 미국은 한국전쟁이 터진 직후인 1950년 7월8일 일본 ‘평화헌법’을 유린하고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를 창설했으며, 해상보안청을 확대했다. 그해 가을에는 1만여 일본 전범자들에 대한 공직추방 조처를 해제했으며, 3천여명의 제국군인들도 추방 대상에서 뺐다. 미국은 이미 일제 패전 2년 뒤인 1947년부터 일본 재강화(재무장) 쪽으로 대일정책을 급선회했다. 그해 3월 냉전을 알리는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고 7월엔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이 설치됐다. 중앙정보국은 발족 직후 작성한 첫 대외비 문서 ‘세계정세 검토’에서 분명히했다. “미국 영향 아래 일본을 부흥시킬 수 있다면 극동에서 소련에 대항할 수 있다.”(〈비밀파일 CIA의 대일공작〉 교도통신사)

미국은 대소 봉쇄전략의 축으로 유럽에서 마셜 플랜을 추진하는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을 거점으로 육성키로 했다. 이 ‘역코스’ 정책을 세운 중심인물이 조지 케넌이었고, 그는 장차 한반도 전체와 만주까지 자신들의 동아시아 거점인 일본 세력권에 다시 포섭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대일 강화조약은 이런 원대한 구상(대소 봉쇄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선결 과제였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된 것은 1951년 9월8일. 미국은 같은 시기 한국과 일본에 국교 정상화(한일협정)를 압박했다. 1951년 7월28일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경성제국대 법과 출신 ‘친일파’ 유진오가 약 40일간 일본에 머물며 국교 정상화 교섭 준비작업을 벌였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이틀 뒤인 9월10일 외무장관에게 보내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해 10월20일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 예비회담이 도쿄에서 열렸다. 주일 미군 점령군사령부(GHQ)가 모든 걸 주도했다. 그러나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자신들이 가르고 점령한 약소 분단국 한국의 처지는 철저히 무시했다. 당사자 중의 당사자라 할 한국과 중국은 초청받지도 못했으며, 또 하나의 주요 당사자 소련은 중국 제외에 반발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사실상 일본 재무장을 위한 미국-일본 단독강화에 지나지 않았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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