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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좌파의 진정한 존재 이유는 ‘약자 편’

등록 2007-05-10 19:24

한승동의 동서횡단 /

헨리 스피라는 열두살 때까지 파나마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조그만 옷가게를 했는데 어느날 아버지의 부자 친구가 자신의 대저택의 남는 방 몇칸을 내주었다. 집주인이 고용한 두 사람이 어느때 스피라를 찾아와 잡세를 받으러 가는데 함께 가자고 했다. 따라나선 스피라는 은혜를 베풀어준 그 아버지 친구가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목격했다. 집세 징수자들은 가난에 허덕이던 슬럼가 약자들을 총으로 위협해 집세를 짜냈다. 스피라에겐 그때까지 ‘좌파’란 개념도 없었으나 그날로 좌파가 됐다.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트로츠키주의자가 됐고 전국항만노조의 부패한 지도자들에 저항했으며, 1950년대에 미국 남부로 가서 흑인 민권운동을 지원했고, 쿠바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중앙정보국(CIA)의 카스트로 정권 전복공작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에 참가했다. 트로츠키주의를 버린 스피라는 그 뒤 20여년간 착취당하는 동물의 권리 보호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미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석좌교수 피터 싱어는 자신이 쓴 <다윈의 대답>(도서출판 이음)에서 스피라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런 수많은 일을 하게 됐냐고. 스피라는 강자가 아닌 약자의 편에, 억압하는 사람이 아닌 억압받는 사람의 편에, 그리고 괴롭히는 사람이 아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만연해 있는 엄청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싱어는 이것이야말로 좌파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스피라를 움직이는 힘, 그것이야말로 모든 진정한 좌파들의 핵심이 아닐까? 우리가 노력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약자와 빈자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착취받고 괴롭힘 당하는 존재들이 느끼는 고통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리고 최소한의 삶의 조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 앞에서 주저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좌파가 아니다. 만일 세상이란 곳이 원래 그렇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얘기한다든지, 또는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좌파일 수 없다. 좌파는 이런 상황에서 뭔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집권 우파 대중운동연합의 니콜라 사르코지(52)가 좌파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53)에 압승했다. 우파답게도 그의 구호는 “더 많이 일해서 돈 더 많이 벌자”였다. 프랑스 6300만 인구의 1인당 국내총생산액(GDP)은 3만달러가 넘는다. 400명의 가장 부유한 자들이 전세계 인구의 45%를 차지하는 23억명보다 더 많은 부를 누리고, 10억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겨우 연명해가는 세상에서. 덧붙이자면, 최고부자 3명의 재산이 6억명의 재산과 맞먹으며, 지난해 35%나 늘어 3조5천억달러에 이른 946명의 억만장자 재산이 아프리카 전체 국내총생산보다 1조달러나 더 많았다. 일국 차원을 넘어 세상 전체를 본다면 빈부대비는 더 뚜렷해진다.

사르코지에게 표가 몰린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능력, 실행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이었다. 돈을 더 많이 안겨줄 것 같은 사르코지에게 ‘공정한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를 내세운 루아얄은 패했다. 얼마 전 일본 도쿄도 지사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극우 이시하라 신타로에게 표를 찍은 사람들의 지지 구실도, 그가 좀 문제는 있어보이지만 중앙정부에 대들만한 배짱과 한번 한다면 하는 결단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한국 어느 재벌도 실행력은 탁월했다. 연말 대선도 돈과 실행력이 관건일까. 부자들이 더 많은 성장과 일자리를 좇아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으로 미친듯이 달려가면 ‘보이지 않는 손’같은 세상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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