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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주변국들의 ‘링’이었던 한반도
주한미군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등록 2007-06-22 17:59수정 2007-06-22 18:03

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6·25나 6·25사변, 6·25전쟁, 또는 한국동란이란 말을 들으며 자랐는데, 요즘은 흔히 한국전쟁이라 부른다. 일본에선 여전히 조선전쟁이란 말을 많이 쓰고, 서방에선 코리안 워, 코리안 콘플릭트라 하는 모양이다. 전쟁의 또 한쪽 당사자 북한은 조선해방전쟁이라 하고 중국에선 ‘항미원조전쟁’이다. 이름이 제각기 다르고 다양한 것은, 아직 전쟁이 종결되지 않아 객관적 평가가 어렵고 참전세력들이 각기 자신에게 유리한 이름을 고집하는 탓도 있겠다. 그만큼 이해 ‘당사자’들이 많은 전쟁이었다. 1957년에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화둥사범대 외국어학부를 졸업하고 상하이 국제문제연구소 부속대학원을 수료한 뒤 1986년 일본에 건너가 지금 도요가쿠인대학 인문학부 교수(정치학 박사)로 있는 주젠룽(주건영·일본명 슈겐에이)이 쓴 〈모택동(마오쩌둥)의 조선전쟁〉은 한국전쟁을 “조선반도에서 펼쳐진 ‘미중전쟁’이라 부르는 게 마땅하다”는 시각을 소개한다.

1950년 9월 유엔군의 인천 상륙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북한군이 쫓기던 그해 10월 중순 북한지역에 있던 잔류 북한군은 겨우 4개 사단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13만에 이르던 유엔군의 북상을 저지한 것은 북한군이 아니라 10월 하순까지 30만 가까이가 참전한 ‘중국 인민의용군’이었다. 당시 3년간 참전 중국군 수를 서방 쪽은 연 500만으로 추산했고, 1990년대 이후 중국이 밝힌 바로는 25개 보병군단(79개 사단)과 기타 16개 포병사단을 포함한 40여개 사단 등 총 이백 수십만에서 삼백만명. 따로 60만의 중국 민간인이 후방지원을 위해 한반도에 투입됐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국외파병이었다. 서방쪽 추산으로는 그들 중 60만~90만이 죽거나 다쳤다. 중국이 밝힌 사상자는 36만6천명(이 가운데 13만3천여명이 죽었다).

맥아더는 그 전쟁 중에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고 압록강 쪽으로 50만의 장제스 국민당군을 투입해 중국을 뒤바꾸는 확전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마오쩌둥은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이 결국 중국 침략을 겨냥한 것이라 읽었고, 맥아더가 해임되자 환호작약했다. 맥아더 해임은 미국이 당장 중국을 칠 의도가 없다는 걸 의미했다.

400여년 전 역시 이 땅에서 자행된 만행을 조선은 ‘임진왜란·정유재란’으로 불렀고, 일본은 ‘분로쿠·게이초의 역’이라 불렀다. 일본은 그 전쟁에서 5만~6만명의 조선사람과 함께 서적과 도자·인쇄기술 등을 훑어감으로써 근세를 살찌웠으나 명과 조선은 함께 피폐해졌다. 당시에도 대규모 지원군을 보낸 중국(명)은 그 전쟁을 ‘항왜원조전쟁’이라 불렀다.

중국은 두 번 모두 바다를 건너온 대규모 적들을 자국 땅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저지했다. 물론 이들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한반도 주민이었다. 수백만이 죽고 나라가 철저히 망가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에 요구했던 한반도 남부 할양에 대한 거부가 정유재란을 불렀는데, 한반도는 400년 뒤 결국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양단되고 말았다. 분단 기획자의 군대가 서울 한복판을 지금껏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제 땅도 지키지 못한 자들에 대한 조롱인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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