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의 종횡사해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조선시대 태종에 비유한 바 있다. “조선 건국 초기 기득권층의 저항을 무릅쓰고 개혁을 단행했던 태종이 있었기에 후대에 큰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며 자신은 “그런 태종의 마음가짐으로 구시대의 막차이자 새 시대를 여는 다리가 되겠다”는 것이다. 14세기 말~15세기 초 조선 건국기는 19세기 말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큰 문명 전환이 일어난 시기다. 김영수 국민대 교수(한국정치사상사)는 “14세기 말의 변혁은 오늘날 한국인의 전통적 정체성의 기원이며 19세기 말의 변혁은 근대적 정체성의 뿌리”라고 분석한다. 곧, 노 대통령이 태종 노릇을 자임한 것은 문명 전환의 주춧돌을 놓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세계사를 놓고 볼 때 문명 전환 양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시기는 18세기다. 유럽에서는 합리주의와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계몽주의자들이 낡은 체제를 공격했고, 체제 쪽에서는 계몽군주라는 형태로 화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조가 군민일체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다. 일본에서는 난학(네덜란드 서적을 통한 서양학문)이 급속하게 전파돼 근대로 향하는 지적 기반이 형성됐다. 중국 청나라는 이 시기에 유례없는 영토 확장을 이뤘다. 18세기의 이런 모습은 〈위대한 백년 18세기〉(태학사 펴냄)에 잘 그려져 있다.
문명 전환은 물질적 조건과 더불어 사유 체계 전환을 전제로 한다. 조선 건국을 위해서는 불교는 물론이고 기존 경학적 성리학과도 구별되는 정치적 성리학이 필요했다. 근대 서구에서 그 역할을 한 것은 18세기 계몽사상이다. 19세기 이후 서구식 근대화가 지구촌 전체로 퍼져나간 사실을 생각하면 계몽사상은 현대 문명의 뿌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계몽사상의 핵심은 이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성은 분명 진리와 진보로 인도하는 가장 유력한 도구다. 하지만 공동체적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이성은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한다. 이성 자체도 완전하지 않다. 계몽사상의 주체였던 서구의 시민 자체가 이미 ‘돈 있는 백인 남성’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이라크전·베트남전 등 각종 전쟁, 환경·에너지 위기, 전지구적으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또한 이성의 한계를 보여준다. 지금 문명이 근대적 이성을 넘어선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서야 하는 이유다.
정조는 사대부 중심으로 짜인 조선 사회를 전면적으로 바꾸려 했다. 재위 24년(1800년) 내린 노비제도 전면 혁파 조처가 그 보기다. 그런데 넉 달 뒤 그가 숨지자 반대파들은 공노비 혁파로 대폭 줄여 시행한다. 노비 신분에서 벗어난 5만 명 정도의 공노비 가운데 3만 명이 왕실 노비였다. 사대부 체제는 타격을 받지 않고 왕실만 거덜이 났다. 이렇게 시작된 장기 세도정치는 새 문명은 고사하고 결국 조선을 제국주의의 먹잇감으로 만들었다.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며 씨를 뿌리는 일은 분명 지도자의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근대적 이성을 뛰어넘는 계몽사상가도, 시대를 앞서간 정조도 아니다. 그러면서 ‘노무현 이후’에는 세도정치와 같은 만만찮은 역풍이 불 것 같아 걱정스럽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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