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의 종횡사해
헌법재판소는 최근 재외 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한 현행 선거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재외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 영주권을 취득한 자 또는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거주하는 자’를 말한다. 사실상 외국인으로 취급받아온 이들이 이제 한국인이라는 신분을 갖게 된 것이다.
자신의 신분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해외여행을 하다가 신분증을 다 잃어버렸다고 하자. 현지 경찰에게 내가 나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나에 대해 잘 아는 현지인이나 한국 대사관에 연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나의 신분을 보증하는 것은 한국 당국이 제시하는 정보다.
신분증과 국적이 결합한 것은 겨우 20세기 초에 들어서였다고 〈너는 누구냐? -신분 증명의 역사〉(청년사 펴냄)는 설명한다. 그 이유는 신분증이 지닌 양면성에 있다. 우선 신분증은 권력자가 특별한 개인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외교관과 상인 등 제한된 사람에게만 발급되던 통행증이 대표적 예다. 이와 별도로 권력기관들은 체제 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신분 확인 체제를 발전시켜왔다. 권익 보장과 통제 강화라는 대립되는 목적이 신분 확인 제도의 토대였던 셈이다.
유럽에서 신분증이 확산된 것은 15~16세기 패스포트가 본격 도입되면서부터다. 지금은 ‘여권’을 뜻하는 이 단어는 ‘파스포르트’라는 프랑스어를 어원으로 한다. ‘파스’(passe)는 ‘통과’, ‘포르트’(porte)는 ‘성문’이다. 곧, 당시 유럽에서 여러 성문을 지나다닐 수 있는 신분증이 바로 패스포트다. 패스포트는 프랑스혁명 이후인 1792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전국적 등록 체계가 처음 시행되면서 일반적 신분증으로 발전한다. 이런 신분증에 국적 표시를 하는 데 한 세기 이상 걸린 이유는, 권력기관의 입장에선 통제가 개인의 지위 보장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중앙집권제가 시행된 우리나라는 신분증의 역사도 길다. 고려시대에 도입된 호패제에 이어 조선시대에는 호적제를 체계적으로 시행한다. 호적은 지금의 주민등록에 해당하는 것으로, 관청은 대개 3년에 한번 호적대장을 만들고 개인은 자신과 관련되는 내용을 필사해 갖는다. 호적은 군역과 징세 등 주민 관리·통제를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지방 관아들은 설정된 목표치를 맞춰 인구의 일부를 가감하는 일이 많았다.
1968년 1·21사태 직후 도입된 주민등록증 역시 통제 목적이 크다. 유신체제 때인 75년에는 사법경찰관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제시하도록 법규가 만들어졌다. 주민등록증 유무는 차별 대우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국내 외국인이 금융거래나 휴대전화 구입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그런 경우다.
현대사회는 고도로 발달된 신분등록 체제를 전제로 한다. 이제 금융기관과 기업이 보유한 개인 정보는 국가기관 못잖다. 이런 시대에 새 신분증을 갖는다는 건 약간의 권익을 얻기 위해 예측할 수 없는 관리·통제 대상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논설위원 jkim@hani.co.kr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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