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간병하는 가족이 없냐고요?
디아스포라의 눈
7월11일 저녁 외출에서 돌아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내린 순간 이상을 느꼈다. 바닥이 휘청하고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오른손과 오른발이 저렸다. 땀이 비오듯 흘렀다. 기어가듯 해서 집 현관에 가까스로 당도했다. 파트너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문은 잠겨 있었다. 문을 여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아무도 없는 실내로 굴러떨어지듯 들어가 침대까지 기어가서는 드러누웠다. 그대로 꼼짝않고 누워 있었으나 수족 저림이 이어졌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일어나자 구역질이 났다.
“이건, 아무래도 올 것이 온 건가…” 뇌출혈을 떠올렸다. 지인 중에 몇 사람이 뇌출혈을 일으켜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았는데, 얘기를 들어 알고 있던 그들의 초기증상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런 생각만 들었을 뿐 당황하지도 않았고 비장감도 없었다.
그대로 한 시간 가량 누워 있었는데, 그런 중에 파트너가 돌아왔다. 그녀도 놀랐겠지만 구체적으로 손을 쓸 수가 없다. 무리도 아니다. 한국에 와서 1년을 보냈는데도 아직 말도 잘 못하고, 더구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정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때부터 여러가지로 도와준 젊은 벗을 생각해내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나서 나는 파트너에게 “지금부터 하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 메모해줘요”라고 말한 뒤 ‘저리다’ ‘구역질 나다’ ‘현기증 나다’ ‘혈압이 높다’ 등의 단어를 얘기해주었다. 자칫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돼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도 들었기 때문이다.
달려온 젊은 벗이 구급차를 부르고 동행해주었다. 병원 응급병동에 도착해 심전도를 재고 CT촬영 등을 했다. 천만다행으로 뇌출혈은 아닌 모양이지만 혹시 몰라서 그대로 입원하기로 했다. 나는 노인병동 병실로 갔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명실상부한 노인이 됐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57살이다. 일본에서는 아직 현역에 있을 나이지만 한국에서는 노인으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았을 때 처음엔 당혹스러웠으나 요즘엔 고맙게 앉는다.
“홀로 병실에 누워 있으니 묻는다. 아내는요? 자제분들은? 가족간호는 의료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가족에 떠넘기고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다. 핵가족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멀지않은 장래를 생각해보라. 의료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가족주의적 인정이라면 바로 지금, 시민 스스로가 가치관을 바꾸려하지 않는 한 미래는 어둡다.”
내 파트너는 그날 밤 내 증상이 안정되는 걸 지켜보고서야 집으로 갔다. 그녀는 다음날 아침 일찍 왔으나, 요건만 상의하고는 그대로 어학당에 갔다. 이런 행동은 한국에서는 드문 것일까. 병실은 6인실로, 내 양옆의 침대에는 여성들이 환자 시중을 들며 함께 묵었다. 환자 부인들인 모양이다. 허물없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그 여성들이 내게 “사모님은?” 하고 묻기에 “학교에 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어쩐지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 여성이 “자제분들은?” 하고 물어서 “없습니다”고 하자 “왜요?” 하고 거듭 물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흔히 받지만, 특히 이런 경우에는 병원에 문안 오거나 곁에서 시중드는 가족은 없느냐는 의미일 거다. “없다”는 대답은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겐 의외이기도 하고 연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확실히 그 병실 환자들에겐 들락날락하는 아들이나 딸, 며느리들이 병문안들을 왔다. 나중에 파트너한테서 들은 얘긴데, 그날 처음으로 어학당 수업에 지각한 그녀에게 선생이 이유를 물었단다. “왜 지각했어요?” “지난밤 남편이 입원을 해서…” 그 순간, 선생은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단다. “저런! 그런데 왜 학교엔 나왔어요?” 한국에서는 남편이 입원하면 처가 시중드는 게 사회적 상식인 걸까? 그렇다면 내 파트너는 상식에 어긋난 냉혈 인간인 셈이다. 일본의 병원에서는 완전 간호가 원칙이다. 중병이나 수술 직후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곁에서 시중을 들 수 없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정해진 면회 시간에만 면회를 할 수 있다. 그런 원칙이 최근 20년 정도 지나면서 사회적 상식이 됐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 원칙을 더욱 엄격하게 지킬 것이다. 가족 시중들기가 상식이라는 것은 의료제도 자체가 가족의 무료 봉사를 당연한 전제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소자화(小子化 아이 적게 낳기), 핵가족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가족노동(不拂動)에 기댈 순 없게 될 것이다. 시중들어줄 가족이 없는 고독한 노인이나 환자가 급속도로 늘 것이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것으로 그런 추세를 극복할 수는 없다. 그것은 또 노인이나 환자를 보살피는 건 처나 며느리의 몫이라는 잘못된 통념에 따른 여성 억압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일본의 보수파는 버블(거품) 경기가 꺼진 뒤 긴 불황을 거쳐 전후 민주주의의 근본이었던 ‘개인의 존엄’이라는 원칙을 버리고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거기에는 의료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가족’에게 떠넘기고 여성의 희생을 강화함으로써 문제를 해소하려는 저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인다. 앞으로 일본에서도 완전 간호 원칙이 무너져 여기저기의 병실에서 환자 시중을 드는 가족들 모습이 눈에 띄게 될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본인의 가족애가 높아진 결과는 아니다.
한국의 의료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우수하다. 입원해 보니 간호사들도 유능하고 시원시원했다. 그리고 병원의 식사는 맛있고 양도 많았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제도를 밑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이 가족주의적 인정이라면 바로 지금 시민 스스로가 가치관을 바꾸려 하지 않는 한 미래는 어둡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행히 내 병은 심각하진 않아서 병원에서 사흘 밤을 보내고 퇴원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지금 이 원고를 쓰고 있다.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홀로 병실에 누워 있으니 묻는다. 아내는요? 자제분들은? 가족간호는 의료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가족에 떠넘기고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다. 핵가족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멀지않은 장래를 생각해보라. 의료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가족주의적 인정이라면 바로 지금, 시민 스스로가 가치관을 바꾸려하지 않는 한 미래는 어둡다.”
내 파트너는 그날 밤 내 증상이 안정되는 걸 지켜보고서야 집으로 갔다. 그녀는 다음날 아침 일찍 왔으나, 요건만 상의하고는 그대로 어학당에 갔다. 이런 행동은 한국에서는 드문 것일까. 병실은 6인실로, 내 양옆의 침대에는 여성들이 환자 시중을 들며 함께 묵었다. 환자 부인들인 모양이다. 허물없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그 여성들이 내게 “사모님은?” 하고 묻기에 “학교에 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어쩐지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 여성이 “자제분들은?” 하고 물어서 “없습니다”고 하자 “왜요?” 하고 거듭 물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흔히 받지만, 특히 이런 경우에는 병원에 문안 오거나 곁에서 시중드는 가족은 없느냐는 의미일 거다. “없다”는 대답은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겐 의외이기도 하고 연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확실히 그 병실 환자들에겐 들락날락하는 아들이나 딸, 며느리들이 병문안들을 왔다. 나중에 파트너한테서 들은 얘긴데, 그날 처음으로 어학당 수업에 지각한 그녀에게 선생이 이유를 물었단다. “왜 지각했어요?” “지난밤 남편이 입원을 해서…” 그 순간, 선생은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단다. “저런! 그런데 왜 학교엔 나왔어요?” 한국에서는 남편이 입원하면 처가 시중드는 게 사회적 상식인 걸까? 그렇다면 내 파트너는 상식에 어긋난 냉혈 인간인 셈이다. 일본의 병원에서는 완전 간호가 원칙이다. 중병이나 수술 직후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곁에서 시중을 들 수 없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정해진 면회 시간에만 면회를 할 수 있다. 그런 원칙이 최근 20년 정도 지나면서 사회적 상식이 됐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 원칙을 더욱 엄격하게 지킬 것이다. 가족 시중들기가 상식이라는 것은 의료제도 자체가 가족의 무료 봉사를 당연한 전제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소자화(小子化 아이 적게 낳기), 핵가족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가족노동(不拂動)에 기댈 순 없게 될 것이다. 시중들어줄 가족이 없는 고독한 노인이나 환자가 급속도로 늘 것이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것으로 그런 추세를 극복할 수는 없다. 그것은 또 노인이나 환자를 보살피는 건 처나 며느리의 몫이라는 잘못된 통념에 따른 여성 억압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일본의 보수파는 버블(거품) 경기가 꺼진 뒤 긴 불황을 거쳐 전후 민주주의의 근본이었던 ‘개인의 존엄’이라는 원칙을 버리고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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