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 논설위원
김지석의 종횡사해 /
미국 베이비붐 세대가 최근 첫 퇴직연금 신청을 했다. 미국에서는 만 62살이 되는 해부터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고 65살에 노인 의료보험 수혜 대상이 된다. 2차대전 종전 다음해인 1946년에서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이 베이비붐 세대다. 46년생인 조지 부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 세대의 맏형이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는 7800만명으로 성인 인구의 30%에 가깝다. 이들은 풍요의 시대에 자라 젊은 시절에 베트남전 반전운동과 성해방·환경·여성 운동 등에 참여하고 워터게이트 사건과 석유위기 등을 경험한 ‘의식 있는 세대’다. 또 텔레비전과 비틀스 음악 등 공통의 대중문화를 통해 정체성을 다진 첫 세대다. 종교와 전통에 큰 관심이 없는 개인주의 세대이자 부모와 자녀를 모두 부양해온 ‘낀 세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사회·정치적으로는 386세대를 포함한 민주화세대와 통하고, 문화·경제적으로는 80년대 이후 어린시절을 보낸 신세대와 닮았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 은퇴는 우리나라에 보내는 경고장과 같다. 이들의 은퇴가 완전히 끝나는 2030년에는 연금 수혜자가 지금의 5천만명에서 8400만명으로 늘고, 의료보험 수혜자도 4400만명에서 7900만명으로 많아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베이비붐이 한국전쟁 종전 다음해인 1954년부터 시작돼 70년대 초반까지 지속됐다. 그런데 이들의 본격 은퇴가 시작하는 2010년대 후반부터 전체 인구 역시 줄기 시작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저출산이 맞물려 노인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지금 우려하는 것 이상의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나타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작은 노동력과 생활형태에 대한 기존 관념을 크게 바꿀 것을 요구한다. 2020년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신흥공업국은 거의 동시에 노동력 부족에 부닥친다. 중·하급 노동력은 다른 나라로부터 일부 채워지더라도 고급 노동력이 구미 등으로 빠져나가는 추세는 오히려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대체할 중·고급 노동력 확보가 나라 발전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 가장 유력한 해답은 베이비붐 세대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엑소더스 코리아>(집사재 펴냄)는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사회 변화와 우리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지식기반 경제가 요구하는 지혜(wisdom)와 나이의 상관관계다. 지혜는 지식의 습득(인지적 측면)과 정서(정서적 측면)를 통해 걸러진 정보의 분석(반성적 측면)과 직결돼 있다. 여러 연구를 보면, 지혜는 중년기에 절정에 이르러 평행상태를 유지하다가 인지 능력이 감소하는 70대 중반 이후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곧, 격렬한 신체 활동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면 70살 전후까지 노동력의 질이 유지된다. 게다가 나이 든 사람은 갈수록 경제에서 중요해지는 ‘사회적 가치’들을 잘 체화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작은 현대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는 대사건이지만, 해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는 셈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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