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선거는 민주사회의 꽃이다. 유권자들은 선거 과정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선거의 질과 사회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석 달 반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통령 선거 역시 그래야 한다. 그런데 후보들의 자질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민주시민의 도덕〉(로버트 프리먼 버츠 지음, 나남 펴냄)이 제시하는 ‘민주시민의 12덕목’이 한 기준이 될 수 있다. 12덕목은 정의, 평등, 권위, 참여, 진실, 애국주의, 자유, 다양성, 사생활 보호, 적법절차, 재산권, 인권을 말한다. 앞쪽 여섯은 ‘하나의 참된 형태’(시민의 책무)를 구성하고, 뒤쪽 여섯은 ‘다수의 참된 형태’(시민의 권리)에 해당한다. 양쪽을 합쳐야 ‘다수로 이뤄진 하나’(e pluribus unum)라는 공동체의 이상에 접근할 수 있다. 1980년대 미국 사회를 대상으로 했지만 지금 우리 사회라고 다를 건 없다.
12덕목 가운데 으뜸은 정의다. 정의는 민주사회의 핵심 기초이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다수 구성원은 자신의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크게 분배적 정의와 응보적 정의로 나뉜다. 분배적 정의는 부·권력·존경·보상 등 ‘좋은 것’들을 사회 구성원에게 분배하는 방법과 관련이 있고, 응보적 정의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적절한 응징을 내용으로 한다. 현대 사회에서 부정의를 얘기할 때는 대부분 분배적 정의가 문제가 된다.
미국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분배적 정의와 관련한 두 원칙을 강조한다. 우선 각 개인은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전체 체계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모든 시민은 신체·재산권·양심·정치참여 등 모든 기본적 자유에서 ‘절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관련해서는 다음 두 가지 사항이 동시에 총족돼야 한다. (1)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가장 이득이 돼야 한다. (2)공적 직책과 직위는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이에게 개방돼야 한다. 부·소득·권력 등 사회·경제적 재화의 분배에서는 절대 평등은 아니더라도 기회균등과 약자 우선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에 대한 이런 기준만 갖고 살펴봐도 대선 후보들의 차이는 쉽게 드러난다.
인간 사회는 진보하고 있다. 개인과 사회의 역량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커졌다. 보통의 현대인이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은 고대의 최고 엘리트보다 많고, 물리적인 힘도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고 있다. 곧, 인간은 지식과 자연 지배력에서 나날이 전진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 정신은 얼마나 진보했는가’라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욕망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지만, 정의·사랑·진실·생명·평화 등 삶을 지탱하는 근원적 가치의 성취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덕목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지도자가 될 사람은 당연히 민주시민의 덕목을 체화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유권자들도 선거에서 후보들의 덕목을 조목조목 따져보고 고양시키기보다는 이전투구의 싸움에 관전자로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 대가는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모두에게 돌아간다.
논설위원 jkim@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