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
“인디오(중남미 원주민)들은 큰 죄악에 빠진 자들이고 인육을 먹는 자들이다. 그들은 정신이 조악하고 예술적인 감각이 전혀 없는 천성적 노예들이므로 주인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들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고 동족을 학살하므로 기독교 국가들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고의 목적인 복음화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더라도, 무력을 사용해 미리 정복해 놓으면 그들을 개종시키기가 한결 쉬워지는 것이 분명하다.”
바야돌리드는 프로축구팀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도시 이름이다. 이곳에서 1550년부터 다음해까지 교황이 보낸 추기경의 사회로 역사적 논쟁이 벌어진다. ‘인디오들이 모든 것을 골고루 갖춘 진정한 인간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이미 수십년간 자행된 원주민 학살과 차별에 정당성이 있는지를 뒤늦게 따져보는 자리다. 여기서 신학자 세풀베다는 원주민의 문화적 차이를 열등함으로 연결시키면서 유럽인의 정당성을 강변한다. 그는 신대륙을 쉽게 정복한 것도 신의 은총이자 섭리라고 주장한다. <바야돌리드 논쟁>(샘터 펴냄)은 이런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초기에 신세계에 대한 두 가지 신화가 있었다. 긍정적인 쪽으로는 ‘잃어버린 낙원’, 부정적인 쪽으로는 ‘악마의 제국’이 그것이다. 둘 다 비현실적 상상의 산물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유럽은 문명세계이고 신대륙은 문명 아닌 어떤 것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런 인식은 이후 신대륙을 점령해나가면서 ‘문명 대 야만’으로 발전한다. 이른바 문명화는 원주민 학살과 인권 유린을 합리화하는 주된 근거가 된다.
역사적으로 문명과 야만이 부닥칠 때 혜택을 보는 쪽은 대개 문명이었다. 문명은 야만으로부터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갱신할 활력까지 얻는다. 로마는 게르만 지역과의 싸움으로써 제국의 틀을 잡았고, 근대 유럽은 신대륙과 만남을 계기로 세계사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중국 사상의 원류를 형성한 춘추전국 시대는 한족이 야만족이라 이르던 북방민족이 중국사에 통합되던 시기였다. 북방민족이 다시 득세한 위진남북조 시대에도 사상의 부흥이 있었으며,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문명과 야만의 교류·통합은 역사를 진전시키는 힘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억압과 차별과 착취가 횡행한 것이 인류의 모습이다. 이제 문명은 ‘보편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핵심은 민주주의다. 안타깝게도 문명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방적인 문명화 논리는 잘 바뀌지 않는다. 미국이 민주주의 확산을 명분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계속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내일로 여덟 돌이 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크게 퇴보한 이유가 집권세력의 의식에 잠재된 낡은 문명화 논리에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북한은 잃어버린 낙원도, 악마의 제국도 아니다. 문명 대 야만의 구도가 남북관계에 적용될 수도 없다.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공식화한 6·15 공동선언이 세풀베다 식의 사고방식으로 질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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