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이론을 실천한 라이프니츠…하노버는 이 천재를 그리워했다

등록 2013-03-06 20:03

폭격당한 교회건물과 복원된 라이프니츠의 집. 독일 하노버 시내에 있는 에기디엔 교회(왼쪽). 14세기에 세워진 이 건물은 1943년 폭격으로 파괴된 이래 전쟁과 폭력에 대한 경고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복구하지 않은 모습으로 보존하고 있다. 하노버를 대표하는 사상가 라이프니츠를 기리기 위해 세운 라이프니츠 하우스(오른쪽). 이 건물 역시 2차 세계대전 중에 파괴됐으나, 다른 장소에 전면만 원래의 모습을 복원했다.
폭격당한 교회건물과 복원된 라이프니츠의 집. 독일 하노버 시내에 있는 에기디엔 교회(왼쪽). 14세기에 세워진 이 건물은 1943년 폭격으로 파괴된 이래 전쟁과 폭력에 대한 경고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복구하지 않은 모습으로 보존하고 있다. 하노버를 대표하는 사상가 라이프니츠를 기리기 위해 세운 라이프니츠 하우스(오른쪽). 이 건물 역시 2차 세계대전 중에 파괴됐으나, 다른 장소에 전면만 원래의 모습을 복원했다.
[김덕영의 사상의 고향을 찾아서]
⑩ 라이프니츠가 40년 머문 하노버
“이성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이론과 실천 결합” 명제 붙들고
이론의 현실 응용 애쓴 철학자

미적분 발견하고 계산기 발명
남긴 글만 무려 6만편에 달해

하노버대학 안 상설전시관과
흉상 모신 라이프니츠 신전
그가 묻힌 성 요한 교회 등
도시 곳곳에 그의 흔적 남아

독일 같은 유럽의 도시를 다니다 보면 오래되거나, 아름답거나, 우아하거나, 장엄하거나 위엄이 넘치는 건축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건축물들은 나름대로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고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보는 순간 사람을 얼어붙게 하지는 않는다. 이번에 그런 건축물을 만났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1646~1716)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독일 북부의 내륙도시 하노버에서였다.

라이프니츠는 서구 정신사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보편천재’다. 미적분을 발견했는가 하면(참고로 라이프니츠와 뉴턴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미적분을 발견했다), 중국에 대한 저술도 남겼다. 그가 남긴 글은 무려 6만여편에 20만쪽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그의 서신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그 양이 1만5000통에 이르고 수신인만 해도 16개 나라에 1100여명이나 된다.

새해 첫 금요일에 하노버를 찾았다.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려, 홀로 큰 사상가의 발자취를 찾아 헤매는 사람의 마음을 꽤나 울적하게 만들었다. 9세기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나니, 세상에 나를 아는 사람이 적구나”라고 읊었던 신라 학자 최치원의 심경도 이러했을까?!

하노버에는 곳곳에 라이프니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먼저 시내 중심에 있는 ‘라이프니츠 하우스’를 찾았다. 1499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저택인데, 라이프니츠가 1698년부터 171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1981~83년 다른 장소에 전면만 원래 모습으로 복원했다. 현재는 하노버대학의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되고 있는데, 아쉽게도 그의 유품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어서 하노버대학으로 길을 잡았다. 시내 중심에서 우반(U-Bahn: 도시 안을 천천히 운행하는 열차로 우리의 옛 전차에 해당함)으로 세 정거장을 가니 대학이 나왔다. 하노버대학은 라이프니츠의 탄생 360년을 맞은 2006년부터 학교명을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대학’으로 바꾸었다. 1831년 개교한 이 대학은 그동안 그냥 하노버대학으로 불렸다. 라이프니츠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년 동안 하노버 궁정의 고문관 및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면서 숱한 업적을 남겼다. 이 역사성을 되살리고 그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계승해 대학의 연구와 강의에 통합시키려는 것이 개명의 취지였다. 이런 걸 두고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하던가?

하노버대학은 옛 성을 사용하고 있다. 현관에 들어서니 딱 무도장으로 쓰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웅장하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와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대학인데 무언가 있기는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직원에게 물어보니 아래층에 내려가 보라고 한다. 거기에는 작은 라이프니츠 상설 전시관이 있는데, 그날은 운 좋게도 그 전시관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은퇴한 교수가 나와 있었다. 아주 신이 나서 상세한 설명도 해주고 자료도 듬뿍 건네주었다.

그 전시장에 드리운 어두운 빛깔의 천에는 라틴어로 된 명제 ‘이성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nihil sine ratione)와 그 천 뒤쪽에 있는 한 유리 벽면에는 역시 라틴어로 된 명제 ‘이론과 실천의 결합’(Theoria cum praxi)이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전자의 명제는 라이프니츠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그의 광범위하고 방대한 지적 세계를 궤뚫는 핵심개념은 바로 이성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통용되는 이성 개념과 달리 라이프니츠의 이성 개념은 포괄적이다. 그것은 단순히 인식하고 실천하며 판단하는 인간 이성이 아니라 자연과 세계의 질서, 원리, 근거 및 이념이다. 그러므로 인간만이 아니라 신도 이성적 존재다. 또한 현실도 이성에 근거하고 이성에 의해 지배되므로 역시 이성적인 존재이다. 곧 이성은 현실의 질서가 된다. 그러므로 이성은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이다.

물론 라이프니츠가 통찰한 신적 이성과 인간적 이성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신적 이성은 무한하고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모든 사물과 인간의 근거가 된다. 이에 반해 인간적 이성은 유한하고 상대적이며 불완전하다. 인간적 이성은 본원적 이성인 신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신적 이성과 인간적 이성 사이에, 아니 모든 종류의 이성 사이에는 구조적 동일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신적 이성과 인간적 이성 사이의 차이는 어디까지나 단계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요컨대 라이프니츠의 사상에서는 이성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된다.

하노버대학 앞에는 ‘게오르겐 정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그 어딘가에 ‘라이프니츠 신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하는 가운데 그 넓은 정원에서 드문드문 조깅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한 30분을 걸어갔다. 저만치서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 건물은 호수로 둘러싸인 곳에 있으며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 다리를 건너 가까이 가 보니 신전에 라이프니츠의 흉상이 모셔져 있었다. 이 신전을 보니 라이프니츠가 하노버에서 어떤 의미가 있으며 하노버가 라이프니츠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게다가 물과 숲으로 이루어진 그 주변 경관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쉽게 눈길을 떼거나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기왕 마음을 빼앗겼으니,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한숨 돌릴 겸 잠시 상념에 잠겨 보았다.

하노버대학의 라이프니츠 전시관에서 본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라는 명제는 라이프니츠의 사상체계를 떠받치는 중요한 주춧돌 가운데 하나다. 요컨대, 이론은 사변적이고 공허한 탁상공론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인식과 사유를 통해서 얻어진 이론과 지식을 인간과 사회를 위하여 농업·상업·공업·광산업 등 다양한 삶의 영역에 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확고한 입장 때문인지는 몰라도 라이프니츠는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지 않았다. 이론을 위한 이론을 추구하는 상아탑은 그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계산기를 발명하고 광산에 필요한 양수기를 발명하며 자연과학적 연구와 발명을 목적으로 하는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등 이론과 실천을 결합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라이프니츠가 추구한 이론과 실천의 결합은 그의 핵심 사상인 이성의 원리에서 도출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이성은 신의 이성과 달리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태인데, 이 실현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실천이다. 그러나 실천은 이론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이론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론과 결합한 실천, 곧 실천철학은 합리적인 인간 행위와 사회질서를 촉진시킨다. 물론 인간의 이성은 완벽하게 실현될 수 없다. 만약 그리된다면 인간이 신적 존재가 된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

라이프니츠 신전을 ‘참배’한 다음 다시 우반을 타고 시내로 들어와서 라이프니츠가 묻힌 ‘성 요한 교회’를 찾았다. 그리로 가는 길에 ‘라이프니츠 냇가’라는 뜻의 ‘라이프니츠 우퍼’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 길은 말 그대로 어떤 냇가에 있었다. 성 요한 교회는 독일의 유명한 교회들과 달리 외부와 내부가 모두 단순하고 소박한 인상을 주었다. 1666~70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교회는 가톨릭의 이상을 구현한 중세 교회들과 달리 프로테스탄티즘의 이상을 구현한 근대적인 교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미와 소박미를 자랑하는 듯 보였다. 교회의 설교단 왼쪽에는 석판이 하나 있는데 그 위에는 라틴어로 ‘라이프니츠의 무덤’이라는 글귀가 보였다. 그 교회에 있는 한 젊은 여성의 말로는 이 교회의 지하실에서 발견된 라이프니츠의 석관 뚜껑이라고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교회의 홀에 라이프니츠의 두개골이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까 만난 그 여성에게 물으니, 진짜는 아니고 진짜를 보고 만든 것이라 진짜와 거의 같단다. 내가 독일인들의 문화에서 아무리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이해한다고 하지만 감정적이고 정서적으로 끝내 융화될 수 없는 것이 수없이 많다. 인간 실존의 한계일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언어·음식·인간관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죽음에 대한 표상이 그렇다. 공동묘지가 시내에, 그것도 때로는 주택가 바로 옆에 있지를 않나, 교회에 버젓이 사람의 두개골을 전시해 놓지를 않나! 어려서부터 죽음은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나로서는 왠지 낯선 풍경이다.

라이프니츠의 흔적을 돌아본 뒤 또 언제 하노버를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새 시청 건물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독일에서 새 시청(물론 모든 도시에 있는 것은 아니다)은 일반적으로 도시가 커지고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서 새로이 지은 건물이라 대개는 볼 것이 없다. 그런데 하노버의 새 시청은 경우가 좀 다르다. 이 시청은 독일 제국 시대인 1913년에 완성된 장려한 건물로서 시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궁전과도 같다.

하노버 새 시청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떤 교회와 마주쳤다.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교회가 완전히 파괴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14세기에 세워진 에기디엔 교회인데, 1943년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복구하지 않은 채 놔둠으로써 전쟁과 폭력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도록 했다고 한다. 사실 독일의 도시에서는 전쟁과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의 야만성과 잔인성을 이토록 온몸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기념물을 만난 적이 없다. 아니 어느 예술품이 이보다 더 강력하고도 처절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카메라로 전체 모습을 담아낼 수 없는 것이 그렇게 통탄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날 내가 하노버에서 체험한 것은 전율 그 자체였다.

라이프니츠는 계몽주의의 문턱에 서 있었다. 그는 계몽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성을 중시했지만, 계몽주의자들과는 달리 이성을 인간에 제한하지 하지 않고 이성에 의해 자연과 세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고 했다. 그는 이성에 의해 합리적으로 신을 인식하고 증명하고자 했다. 이 점에서 라이프니츠는 칸트보다는 헤겔에 가까웠다.

김덕영 사회학자·독일 카셀대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금 따러 가세~ 금 잡으러 가세~
1천억 들인 홍상어 실패에…누리꾼 “차라리 인간어뢰를”
“아이고 별일이 다 있네”‘감자튀김’ 한-일 대결?
며느리도 모르는 대기업 임원 연봉 이젠…
3년간 똥 치웠으니 3년간 노망해도 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