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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현상학 창시자 후설 덕에…작은 도시 괴팅겐, 철학운동 중심지로

등록 2013-03-13 20:03

대학도시 상징 된 ‘거위 소녀’ 동상 
독일 괴팅겐 구시청 광장에 놓인 ‘거위 소녀’ 청동상. 그림 형제의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 청동상은 ‘대학도시’인 괴팅겐의 상징이다. 대학에 등록한 학생들이 소녀에게 키스를 하고 꽃을 바치는 전통이 전해오고 있다.
대학도시 상징 된 ‘거위 소녀’ 동상 독일 괴팅겐 구시청 광장에 놓인 ‘거위 소녀’ 청동상. 그림 형제의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 청동상은 ‘대학도시’인 괴팅겐의 상징이다. 대학에 등록한 학생들이 소녀에게 키스를 하고 꽃을 바치는 전통이 전해오고 있다.
[김덕영의 사상의 고향을 찾아서]
⑪ 현상학 운동 발원지 괴팅겐
인구 12만명 규모는 작지만
교육·연구의 도시 자부심 커

후설이 괴팅겐대 교수로 온 뒤
‘주체 지향성’ 강조 현상학 창시
이성영역 머물던 철학사유 확장

그가 쓴 4만쪽의 방대한 자료
지금까지 ‘후설 총서’로 발간중

1990년대 초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던 때의 일이다.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의 현상학을 두 쪽가량으로 정리할 일이 생겼다. 막스 베버의 문화과학 및 사회학에 대해 갖는 지성사적 의미를 논하는 것이었다. 논문도 거의 완성되었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대학 도서관에 갔다가 까무러칠 뻔했다. <후설 총서>가 두 줄로 꽂혀 있는데 너무나 방대해서 그중에 내가 찾는 책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많이 쓸 수 있을까 하는 경외감이 들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후설 총서>는 완간된 것이 아니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내가 지식인의 신조로 삼고 있는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때의 체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처럼 내가 지적으로 어린 시절 큰 사표로 삼았던 후설은 오스트리아 모라비아 지방(오늘날에는 체코 공화국에 속함) 출신의 유대인이다. 그러나 학자로서의 이력은 전적으로 독일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1887년부터 1901년까지 무려 14년 동안이나 할레대학에서 강사로 있다가, 1901년에 42살의 나이로 괴팅겐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1916년 프라이부르크대학에 초빙되어서 1928년 정년퇴임했다.

2012년의 마지막날, 후설의 발자취를 찾아서 괴팅겐으로 길을 잡았다. 괴팅겐은 이번에 순례하는 추로지향 가운데 내가 머물고 있는 카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도시이다. 직선거리가 40㎞가 채 안 되며, ‘도시 간 고속철도’(ICE: Inter City Express)로는 20분, 완행열차로는 한 시간 걸린다. 시인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말마따나 단순히 “공간을 살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도시 간 고속철도를 타야겠지만, 여행하는 맛을 즐기려면 역시 완행열차가 제격이다. 강이 따라오고 숲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한다. 넓게 펼쳐진 산야와 거기에 드문드문 자리한 마을들은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이 넘친다.

카셀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맥주를 한아름씩 안고 탄다. 괴팅겐의 친구들과 송구영신 파티를 하러 가는 모양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젊어지는 것 같다. 좀 시끄러운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괴테이던가, 와인을 마시지 않고도 취하는 것이 젊음이라고 말한 이가?!

괴팅겐에 도착해 후설이 살던 집을 먼저 찾아나섰다. 그가 살던 곳은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아담하고 소박한 3층집이었다. ‘헤르만-푀게-베크 7번지’에 있는데, 집 오른쪽 벽 중간에 “에드문트 후설 1901~1916”이라는 글귀가 음각된 기념편액이 걸려 있다. 그리고 왼쪽 벽 중간에도 또다른 두 개의 기념편액이 걸려 있는데, 그것은 당시 여성으로서 두번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리아 괴페르트메이어(1906~1972)와 그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괴페르트(1870~1927)가 이 집에 살았던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지금도 한적한 편이지만, 당시에는 더욱 조용할 듯하여 사색과 연구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박사학위 논문 막바지 단계에서 참고하려고 찾았던 후설의 책은 〈논리연구〉였다. 이 책은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권은 1900년에, 제2권은 1901년에 출간되었다. 이 〈논리연구〉는 현상학의 태동을 만천하에 고지한 저작으로서, 그 지성사적 의미는 역시 1900년에 출간되어 정신분석학의 태동을 만천하에 고지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작 〈꿈의 해석〉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업적으로 인해 후설은 1901년 괴팅겐대학의 교수로 초빙됐고,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부교수로 시작한 그가 정교수가 된 것은 1906년의 일이었다.

후설이 살았던 집에서 한 집 건너에 ‘막스 플랑크 다종교 및 다인종 사회 연구소’가 있다. 괴팅겐에는 총 4개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있으며, 약 20㎞ 떨어진 카틀렌부르크린다우에 있는 태양계 연구소까지 합치면 총 5개가 된다(실제로 이 연구소는 괴팅겐 소재로 친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대학과 독립적인 연구기관이다. 그러나 대학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이 소재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아무튼 인구 12만의 괴팅겐은 지방의 이름 없는 한 작은 도시가 아니라 교육과 연구의 중추적인 구실을 하는, 작지만 아주 큰 도시이다. 이러한 자부심은 중앙역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곳의 플랫폼에는 괴팅겐이라는 현판 바로 밑에 “지식을 창출하는 도시”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그 이전에는 “대학도시”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는데,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고려해 그렇게 바꾸지 않았나 싶다.

괴팅겐대학은 1734년에 설립되었다. 중세에 세워진 대학들과 달리 괴팅겐대학은 계몽주의 정신의 세례를 흠뻑 받았다. 그에 걸맞게 “모든 사람들의 복지를 위하여”를 대학의 슬로건으로 내세웠으며, 학생들을 대학 바깥의 세계에 적합하도록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리하여 철학부, 법학부 및 의학부를 신학부와 동등한 위치에 놓고 가르쳤다. 이러한 계몽주의 정신에 힘입어 괴팅겐대학은 유럽 수학과 자연과학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근대 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1777~1855)가 바로 이곳에서 공부하고 가르쳤다. 가우스와 더불어 괴팅겐대학은 근대 수학의 메카가 되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더불어서 20세기 물리학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는 양자역학은 바로 이곳 괴팅겐대학에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다. 양자역학의 산파 구실을 한 세계적인 학자들이 바로 이곳에서 연구하거나 교류하곤 했다.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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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팅겐대학은 1901년 후설이 교수로 초빙되면서 향후 독일 철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가 창시한 현상학은 빌헬름 딜타이(1883~1911)의 정신과학 철학 및 신칸트학파의 철학과 더불어 당시 독일 철학의 중요한 사조를 형성했다. 딜타이는 베를린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고, 신칸트학파는 마르부르크대학을 거점으로 하는 마르부르크학파와 하이델베르크대학을 거점으로 하는 서남학파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괴팅겐은 후설에 힘입어 베를린, 마르부르크, 하이델베르크와 더불어 당시의 독일 철학계를 주도했던 것이다.

이 세 철학적 조류는 1830년대부터 독일 관념론과 신인문주의가 쇠퇴하면서 경험적이고 실증적으로 지향된 사고체계,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실증주의가 급부상하면서 초래된 과학과 철학의 위기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그리고 칸트에 접목하면서도 칸트를 넘어서는 철학적 사고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는 또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흔히 현상학은 그 명칭 때문에 현상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와 달리 현상학은 인간의식에 주어지는 현상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상학에서는 주체가 대상에 대해 철학적 우위를 점한다. 이런 점에서 현상학은 칸트의 비판철학과 마찬가지로 주체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가 주체를 초시간적이고 초월적인 지성계에 속하는 주체와, 시간적이고 경험적인 감성계에 속하는 주체로 양분한 반면에, 후설은 주체를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을 체험하는 정신적-육신적 통일체로 간주한다. 또한 주체의 의식에서 출발하는 칸트와 달리 후설은 주체와 대상의 상호관계에서 출발한다. 후설은 상호관계의 ‘아프리오리’(경험보다 앞서는 선험적인 것) 위에 그의 현상학적 사고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지향성, 본질직관, 현상학적 환원, 시간성, 상호주관성, 생활세계 등의 개념과 이론으로 구현된다.

후설 현상학의 핵심개념은 지향성,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객체에 대한 주체의 지향성이다. 이 지향성은 단순히 인식론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식 전체를 아우른다. 그러므로 인식 이외에도 다음과 같이 아주 다양한 정신작용이 현상학적 논의의 대상이 된다. 시간의식, 감각, 인지, 기억, 환상, 예감, 표상의식, 감정이입, 추상, 이상화, 사고, 판단, 추론, 상징의식, 가치평가, 고통과 쾌락, 다양한 감정의식, 충동의식, 욕망, 의지, 동기, 관습, 성격, 입지 등. 이로써 이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철학적 사유가 인간의식의 영역과 지평 전반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 다양한 정신작용을 통해서 상호주관성과 생활세계가 형성된다. 바로 여기에 갈릴레이 이후 계량화되고 객관화된 서구 문화와 철학 및 과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다고 후설은 확신해 마지않는다.

1900년대 초반에는 후설과 괴팅겐을 중심으로 현상학 운동이 일어나면서 현상학은 철학의 영역을 넘어서 다양한 인식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13년에는 후설에 의해 <철학 및 현상학 연구 연보>가 창간되어 1930년까지 총 11권과 별책 1권이 발간되면서 이 현상학 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괴팅겐이 전형적인 대학도시라는 자아상은 공간적-예술적으로도 구현된다. 구시청 앞의 시장 광장에는 분수대가 하나 있고 그 위에 ‘거위 소녀’라는 청동상이 있다.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가녀린 소녀가 양손에 여러 마리의 거위를 들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인데, 원본은 괴팅겐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지금 서 있는 것은 모조품이라고 한다. 1901년에 이 ‘거위 소녀’가 세워지자 대학에 등록을 마친 학생들이 분수대 위에 올라가 그 소녀에게 키스함으로써 이 청동상은 대학도시 괴팅겐의 상징이 되었다. 현재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져서 갓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만이 ‘거위 소녀’에게 키스를 하고 꽃을 바친다고 한다. 그날도 꽃이 꽂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위 소녀’를 바라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후설은 4만쪽에 이르는 수고를 남겼다. 이 방대한 자료는 현재 벨기에 루뱅대학의 ‘후설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으며, 1950년부터 <후설 총서>로 발간되고 있다.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20여년 전 지적으로 어린 시절 우연한 기회에 후설의 저작을 보고 세운 지식인의 신조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를 얼마나 성실하게 실천해왔는가라고! 어느덧 ‘거위 소녀’ 위로 어둠이 내리면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시간의 저편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시장 광장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거위 소녀’에게 작별을 고하고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김덕영 사회학자·독일 카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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