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으로 이사온 인간 최우혁에게 용이라는 걸 들킨 <용이 산다>의 김용.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용이 산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의 초 작가
<용이 산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의 초 작가
지난주 <수업시간 그녀>를 ‘올해의 발견’으로 시상하며 나홀로 웹툰 연말 시상을 시작하고 있다. 이번주에는 ‘올해의 변신’ 부문에 네이버 웹툰 <용이 산다>의 초 작가를 선정하도록 하겠다. 원룸 옆방에 용이 살고 있다는 기발한 설정의 개그 시트콤인 <용이 산다>로 연재 시작과 함께 굉장한 인기를 끄는 초 작가지만, 그의 전작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따뜻하고 때론 울컥할 정도로 애틋한 반려동물과의 생활을 담은 작품이다. <용이 산다>를 보며 낄낄대다가 ‘작가의 다른 작품’ 버튼을 눌러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가 나올 때마다 적응하기 어려운 기분은, 가히 양영순 작가의 <누들누드>와 <덴마>를 동시에 볼 때의 그런 기분이다.
소위 ‘힐링’이라는 코드가 유행하면서 어떤 종류의 작품에 대해 아예 ‘힐링’이라는 장르로 분류하는 경향이 생겼는데(가령 <시간의 섬>, <달이 내린 산기슭> 등) 초 작가의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도 여기에 들어갈 만하다. 윤필 작가의 <흰둥이>나 <검둥이 이야기>가 폭력적인 세상에서 그래도 선한 마음으로 살아보는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라 종종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는 사랑이 필요한 인간과 반려동물이 서로를 원하고 서로에게 위로받는 과정을 그려낸다. 종종 동물의 시점으로 에피소드를 풀어낼 때도 작위적이라 느껴지지 않는 건, 이처럼 인간과 동물을 주종 관계로 그려내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일방적이지 않은 성찰을 조곤조곤하게 풀어내던 그가 올해 중순 <용이 산다>로 복귀했을 때는 그래서 동명이인인지 의심할 정도였다. 역시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 평등하게 교감한다는 접점으로 두 작품의 교집합을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억지 해설이라는 결론만 나왔다. 주인공 최우혁에게 옆집에 사는 용인 김용은 사랑스럽기보다는 가끔 신기하고 종종 귀찮은 시끄러운 이웃이다. 악몽을 꾸다 자기도 모르게 용으로 현신한 김용이 우혁네 벽을 부수고, 김용의 누나 옥분은 취해서 전봇대를 부쉈다가 우혁의 집을 정전시킨다. 요컨대, 이 우당탕탕 소동극과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사이에는 일말의 교집합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처럼 전혀 다른 두 작품을, 그것도 중간 단계 없이 그려낸 이야기꾼으로서의 변신이야말로 초 작가에 대한 작가론의 핵심이 될지도 모르겠다. 주제와 형식 모두에서 멀리 동떨어진 두 작품을 어떤 교집합 없이 각각 그 작품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언젠가 수많은 어시스턴트가 있는 만화 공장을 만들어 김성모 작가처럼 자기 단행본으로 꽉 채우고 싶다는 이 젊은 작가의 엉뚱한 포부는 그래서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 공장은 회색보다는 훨씬 다양한 색깔로 채색되겠지만.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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