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데뷔작에서 느껴지는 ‘대작타는 냄새’

등록 2015-05-08 19:43수정 2015-10-23 18:04

<호랑이 형님>은 ‘동물 액션’이라는 장르를 새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동물 사이의 싸움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호랑이 형님>은 ‘동물 액션’이라는 장르를 새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동물 사이의 싸움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호랑이 형님>의 이상규
과거 서울 군자동에서 자취하던 시절, 볕 좋은 휴일이면 근처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호랑이를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이토록 큰 맹수가 좁은 공간에 갇혀 나른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서글프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 아름다운 줄무늬나 강한 힘과 유연함이 꿈틀대는 거대한 몸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이상규 작가의 데뷔작 <호랑이 형님>의 제목과 잘생긴 호랑이 얼굴이 그려진 섬네일만 보고도 끌렸던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그가 그려낸 호랑이는 산의 왕으로서 힘과 품위를 드러냈다.

물론 호랑이를 멋지게 그려냈다는 것이 이 작품의 미덕 전부는 아니다. 인간과 동물과 마물과 신수가 뒤섞인 특유의 세계관은 한국형 판타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대사 하나하나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복선을 까는 구성은 상당히 치밀하다. 언젠가 김세래 작가의 <마술사>를 설명하며 인용했던 ‘대작 타는 냄새’가 이 작품에 있다. 하지만 이처럼 말로 풀어내면 두루뭉술한 장점이 호랑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로 집중되면 훨씬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극의 초반을 이끌어가는 호랑이 ‘산군’은 만화에도 인용되는 <호질>의 구절처럼 강하고도 어진 영물의 원형 같은 느낌이 있다. 즉 아직 인간의 세계와 괴력난신(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의 세계가 명확히 구분되어 살지 않는 판타지적인 세계관으로서의 조선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기에 신통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산군만큼 좋은 캐릭터는 없어 보인다.

아직 개인 프로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상규 작가는 도저히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의 그림체로 산군의 전투를 역동적으로 그려내며 독자를 자신이 만든 세계 안에 빠르게 몰입시킨다. 극 시작과 함께 시작되는 창귀에 홀린 수십마리 호랑이 무리와 산군의 대규모 전투, 그리고 현재 연재분에서 진행되는 산군과 동양 판타지의 원류인 <산해경>에 수록되고 <호질>에도 언급된 동물 (혹은 괴물) ‘추이’의 일대일 대결은 동물 액션이라는 장르를 따로 분류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박진감 있다. 특히 엄청난 근육이 꿈틀대면서도 고양이과답게 날렵하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산군의 모습은 단단하면서도 유려해서 과거 사람들이 왜 호랑이를 산의 왕으로 경외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물론 아직 살짝 언급되기만 하는 악의 존재 ‘흰눈썹’과, 산군이 모시던 과거의 주인, 그리고 흰눈썹이 노리고 산군이 지키는 아이 ‘아랑사’의 관계 등 중요한 설정들이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진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뒷전인 채 설정의 ‘떡밥’을 뿌려대느라 바쁜 몇몇 판타지 신인 작가들과 달리, 하나의 명확한 구심점이 되는 캐릭터로 이야기를 힘 있게 풀어내는 <호랑이 형님>의 미덕은 극이 아직 초반임에도 상당한 신뢰를 준다. 그가 그려내는 호랑이의 듬직한 형상처럼.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