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소녀>의 주인공은 폐허가 된 미래에 홀로 남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준다.
이 작품의 장르는 무엇으로 봐야 할까. 에스에프(SF)? 블랙코미디? 아니면 작가가 하던 그대로 혼합 스릴러? 황준호 작가의 신작 <미래소녀>를 보며 든 생각이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진 미래의 인류가 과연 어떻게 되는지 화자인 ‘미래소녀’를 통해 이야기하는 이 미래에 대한 픽션은 그만큼 난감하다. 첫 화인 ‘교실 버라이어티’는 ‘왕따야, 안녕’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왕따인 학생이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고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현재의 메이크오버 프로그램(버릇 고치기나 성형 등 개인을 변화시키는 장르)에 대한 풍자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에 대한 엄중한 경고?
사실 전작 <인간의 숲>의 성공으로 스릴러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게 되었지만, 황준호 작가의 작품은 정통적인 의미의 스릴러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 데뷔작 <악연>과 <인간의 숲> 모두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나오고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을 담아내지만 <악연>은 두 살인마의 감정적 교류와 남자 주인공의 윤리적 고민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살인마들이 떼로 나오는 <인간의 숲>은 그 긴박함 속에서도 주인공 하루가 선과 악의 경계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에 더 집중한다. 주제의식이 있다고 해서 스릴러가 아닌 건 아니지만, 그의 작품에선 서사적 긴장감보다는 과연 악이란 어떻게 발현되는가에 대한 천착이 더 두드러진다.
차라리 그의 작품들은 스릴러보다는 인간 윤리에 대한 실험실이라는 개념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살인마들이 닫힌 공간 안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인간의 숲>은 이러한 극단적 상황에서 타고난 악마들은 어떤 선택을 하며, 평범한 부류의 인간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보고서 같다.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 폐쇄된 연구실이라는 건 다분히 상징적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살인)을 유도할 상황을 계속 만들어야” 해서 힘들었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인물들이 서로 부딪치는 과정은 조금 작위적이다. 즉 실험을 위해 작가의 통제가 많이 개입된 느낌이다.
<미래소녀>라는 정체불명 장르의 신작은, 그래서 노골적으로 이 문제를 돌파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이 작품의 설정 역시 근대적 윤리 개념을 제거한 세상이라는 일종의 통제된 실험실에 가깝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 윤리가 퇴색됐다고 해서 왕따를 위한 메이크오버가 만들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일지 여러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작가는 이것을 미래라는 설정을 통해 슬쩍 비켜난 뒤 도덕으로 통제되지 않는 사회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악을 묘사한다. 과연 이 실험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래소녀>라는 연구보고서가 어떤 결과를 이야기해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작가가 치밀하게 실험을 진행해주길 바랄 뿐이다.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가 시작된 건 사실이니까. <끝>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