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Hun 작가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Hun 작가
이번 토요판의 주제가 간첩 조작 사건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아, 연재 중에 Hun 작가에 대한 글을 안 쓰길 잘했구나.’ 물론 작가의 최고 히트작이자 지난해 영화로도 6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은 동명 영화의 원작인 <은밀하게 위대하게> 때문이다. 가상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북조선 출신 특수요원이 등장하는 김재희 작가의 <70> 같은 작품도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 사용되는 간첩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쓰는 작품은 <은밀하게 위대하게>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아니다. 간첩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그가 가진 모든 인간성이 말소되어 버리는 한국 사회 특유의 시선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사실 영화의 흥행 때문이건, 최고의 남파 간첩이 동네 바보 노릇을 한다는 기막힌 설정 때문이건, 작품 전체의 헐거운 서사에 비해 이 작품이 어느 정도 과대평가받고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빨을 감춘 채 동네 바보 역을 하던 주인공 원류환이 자신을 제거하러 온 또다른 요원들과 싸우기 위해 나서는 장면의 비장함이나 처절한 분위기로의 전환은 매력적이지만, 과연 원류환이 왜 남한에서 그런 임무를 맡았어야 했는지 작품은 말해주지 않는다. 남한에 간첩의 명단을 넘기기 전에 정보가 새지 않도록 그들을 죽이러 간첩 한 무리가 더 들어온다는 이야기도 썩 개연성 있진 않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간첩에 대한 흥미로운 텍스트로 남는 건, 인간병기 원류환과 역시 비슷한 수준의 간첩인 이해랑, 이해진 등이 남한의 평범한 동네 사람들과 쌓아가는 인간적인 감정 때문이다. 자신을 구박하는 듯하지만 둘째 아들처럼 여기는 슈퍼 할머니에 대한 원류환의 애틋한 감정, 인민의 록으로 남조선을 정복하겠노라 허풍을 떠는 이해랑의 자유분방함은 이념이라는 거대 서사에 짓눌려 간첩이라는 특이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남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속의 남파 간첩들은 임무와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다. 요컨대, 부족한 인간이다. 비록 동네 바보로서 무시당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던 원류환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쌓아가는 과정이 썩 촘촘하지 못하지만, 슈퍼 할머니가 원류환을 위해 저축한 통장에 아들이란 표현이 들어 있는 건 노골적으로 신파적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원류환의 감정에 이입된다면 간첩이란 이름 뒤에 가려진 인간의 얼굴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간첩에 대한 옹호는 아니며, 옹호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단지 무고한 이에게 간첩 누명을 씌우면 매장까지 가능한 이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세상에 세뇌되지 않기 위해 한번쯤 되새겨볼 만한 시선이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관련영상] [#9. 최성진·허재현의 토요팟] 여간첩 원정화 사건, 공소장이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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