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이처럼 불공평한 게임 같지만 <다이스>의 세계엔 임무에 따른 보상이 존재한다.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블라인드 메르헨> <다이스>의 윤현석 작가
<블라인드 메르헨> <다이스>의 윤현석 작가
게임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는 게임의 세계에 빠지면 현실감각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왜 그들이 게임으로 도피했는지 그 원인을 현실에서 찾지 않고 오직 게임 탓만 하는 그 편협함에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지만, 실제로 잘 만든 판타지 게임이나 만화의 세계를 즐기다 보면 종종 지금 내가 있는 현실이 참 시시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윤현석 작가의 판타지 만화 <다이스>는, 이토록 답답한 삶으로부터 판타지 게임으로 도피하고픈 욕망이 실제로 실현되는 순간을 다룬다.
반의 ‘빵셔틀’인 동태가 우연히 사람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신비의 주사위 ‘다이스’를 주워 ‘다이서’(다이스를 사용하는 사람)가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다이서의 삶이란 판타지 게임과 비슷하다. ‘다이스’의 관리자인 엑스가 준 임무를 수행하면 그에 합당한 보상으로 자신이 원하는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언제나 출발부터 불공평한 삶이라며 힘들어하던 동태에게 ‘다이스’로 능력치를 올리는 판타지의 세계는 현실의 그것보다 훨씬 공정하고 이상적이다. 그가 단순히 자신의 능력을 올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기 대신 ‘빵셔틀’이 된 병철에게 다이스를 나눠준 건, 자신이 그러하듯 남들도 이 판타지의 세상에서 행복하리라 믿어서다. 하지만 ‘다이스’의 존재가 공개된 뒤 너도 나도 더 많은 ‘다이스’를 취하려 하는 경쟁과 물리적 다툼 속에서 이 판타지의 세계는 모두가 평등한 유토피아가 아닌 더욱더 치열한 아비지옥이 된다.
과연 이것은 판타지에 대한 반명제일까. 적어도 지금까지의 <다이스>만을 보면 동태는 불가능한 꿈을 꿨고, 독자들은 기대했던 판타지로부터 배신당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단순히 판타지에 기대고 싶던 독자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데 만족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바로 윤현석 작가의 전작 <블라인드 메르헨>의 다음과 같은 대사 때문이다. “동화를 믿는다는 건 해피엔딩을 믿는다는 거야.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야.” 작품 속에서 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 동화의 세계에 빠져 살던 주인공 서애린이 외면하고 싶던 현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을 위로해주던 동화의 세계를 긍정했던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더는 동태에게 ‘다이서’로서의 삶이 재밌는 판타지 게임이 아닌 ‘만인에 의한, 만인에 대한 투쟁’에 가까워졌다 해서 그가 ‘다이스’로 꿈꾼 세상이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다이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종 능력이 세상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게 밝혀진 지금, 과연 <다이스>와 동태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판타지 세계의 매력과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이 재미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오직 판타지만이 전해줄 수 있는 희망을 잃고 싶진 않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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