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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우스꽝스러움의 치료효과…반갑다, 해학

등록 2014-11-14 19:01수정 2015-10-23 18:11

<에이스하이>의 중심인 베른슈타인 편대. 그들의 다국적 문화 충돌은 해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에이스하이>의 중심인 베른슈타인 편대. 그들의 다국적 문화 충돌은 해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이창현·유희 작가의 <에이스하이>
풍자의 시대다. 수많은 정치 ‘짤방’이나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퍼지는 ‘드립’처럼, 동시대의 부조리들을 비꼬며 웃음을 유발하는 콘텐츠는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좋은 일이다. 다만 아쉬운 건 해학이다. 비판해야 할 대상을 비웃는 것만큼, 어리석지만 개선시킬 수 있는 대상을 웃음으로써 이해하고 품는 것도 중요하다. 풍자적인 콘텐츠가 쏟아지는 지금, 시즌 3으로 돌아오는 이창현, 유희 작가의 <에이스하이>가 반가운 건 그래서다.

<에이스하이>의 배경은 <에어리어 88>을 패러디한 듯한 말라쿠스탄 왕국 비행 용병부대 에어리어 69다. 동대문 구민일보 국제분쟁 전문기자인 권의진은 취재 거리를 위해 이곳을 찾지만, 말라쿠스탄도 상대 국가인 앗쌀란도 모든 게 어설프고, 한국인 용병인 JJ가 소속된 베른슈타인 편대는 스타킹 성애자인 JJ부터 시작해 가면레슬러 로드리게스까지 엉뚱한 인물들뿐이다. 흥미로운 설정과 흥미로운 인물들의 조합에서 시트콤 같은 캐릭터 쇼를 기대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이 자유로이 뛰놀며 만들어내는 우연의 음악을 들려주기보단 오직 그 상황과 인물들이기에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를 밀도 있게 풀어낸다.

가령 한국인인 JJ, 편대장이자 독일인인 베른슈타인, 러시아의 티호노프, 멕시코인 로드리게스는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고 이것은 종종 충돌의 원인이 된다. 체력단련을 할 테니 운동복을 입고 오라는 지시에 로드리게스는 프로레슬러 복장으로 오고, 편대의 상징을 정하자고 할 때 JJ는 후기 백악기 한반도에 서식한 익룡인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노파심에 첨언하면 실제로 있는 학명이다)로 하자고 제언하는 식이다. 우스워 보이지만 “동물은 학명이 붙는 그 순간부터 보편적인 거”라는 JJ의 말은 쉽게 외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서구 중심주의에 반기를 든 JJ조차 스웨덴에서 왔다는 용병을 보며 “레고의 나라”라며 친밀감을 드러낸다.(역시 노파심에 첨언하면 레고의 나라는 덴마크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이러한 충돌은 자신의 이해 범위 안에서만 세상을 이해하려는 어리석은 인간의 단면을 우스꽝스럽게 보여주되, 또한 그것이 평균적인 인간의 한계라는 걸 보여준다. <에이스하이>의 웃음이 현실의 어떤 부조리함을 드러내되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작가는 베른슈타인 편대를 비판하기보다는 그 우스꽝스러움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웃음만이 서로를 이해하고 결과적인 개선으로 이끄는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대상을 가루가 되도록 까고 나의 우월함을 느끼는 포만감은 여기에 없다. 하지만 진보라는 개념이 더 나은 곳을 향해 가는 거라면, 기왕이면 함께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풍자보단 해학이 좋다. 그래서 <에이스하이>가 좋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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