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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척하는’ 것과 ‘진짜’의 차이

등록 2015-01-23 19:20수정 2015-10-23 18:08

<미결>의 주인공인 만화가 1208은 자의식 가득한 대사를 쏟아낸다.
<미결>의 주인공인 만화가 1208은 자의식 가득한 대사를 쏟아낸다.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살인자 ㅇ난감>, , <미결>의 꼬마비 작가
가장 나쁜 건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작품, 말하자면 ‘척하는’ 작품이다. <미생> 완결 즈음의 인터뷰에서 윤태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그렇다. 재미없는 만화는 그 자체로 별로지만, 부족한 부분을 현학적인 대사나 자의식 과잉의 내레이션, 뜬금없는 결말로 뭔가 있는 척 화장하는 작품은 최악이다. 아, 물론 이번에 소개할 작가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미결>을 ‘완결’한 꼬마비 작가는 작가의 자의식과 지적인 태도가 어떻게 진짜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흔치 않은 사례다.

사실 <미결>의 초반만 해도 혹 이 작가가 ‘척하는’ 작품을 내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자기 세계에 무한한 자신감을 갖고 대중적인 작품은 깔보는 만화가 1208의 자의식 가득한 대사가 혹 꼬마비 작가 본인의 것은 아닐까 하고. 물론 누굴 죽이든 죄 있는 사람을 죽이는 남자 이탕을 주인공으로 한 <살인자 ㅇ난감>은 과연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까지 질문하는 놀라운 스릴러였고, 섹스를 한 사람들끼리 붉은색 선으로 연결된다는 은 보도 듣도 못한 발칙한 작품이었다. 이탕의 능력이나 에스라인의 존재는 그야말로 끝내주는 설정이지만 설정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치밀하게 구성해 책임감 있는 결말로까지 연결해내는 능력이야말로 그의 탁월한 점이었다. 신랄한 대사나 무거운 주제의식에서 다른 웹툰에서 보기 어려운 작가적 자의식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났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그걸 잘 빠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다만 <미결>에서는 이 작가가 혹시 자신의 모습에 취해 신랄한 독설과 있어 보이는 말들로 스토리를 대신하는 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품이 완결된 지금, 이것은 완벽한 오해였다는 게 드러났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결말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꼬마비 작가가 <미결>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창작자의 고민, 생각의 유전자(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밈(meme)에 가깝다) 같은 묵직한 주제는 1208의 입이 아닌, 그를 둘러싼 서사를 통해 드러난다. 즉 그는 창작물과 사상을 남겨 영생하는 방식에 대해 ‘썰’을 풀기보다는 정말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만화 안에서 보여준다. 사적인 복수가 옳은가 그른가에 대해 주절대기보다는 이탕을 통해 독자를 윤리적 딜레마 위에 세우는 <살인자 ㅇ난감>도, 서로가 서로의 은밀한 프라이버시를 들키는 극단적인 상황이 일상을 지배할 때 인간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로 탐구한 도 그러했던 것처럼. 작품으로 철학을 하는 것과 철학적 사변을 만화 안에서 늘어놓는 건 명백히 다르다. 하지만 이들을 구분하기 어렵다면, 팁을 주겠다. 꼬마비의 작품을 기준에 놓고 보면 조금은 쉬워질 것이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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