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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친숙한 레즈비언, 세상을 바꾼다

등록 2015-02-13 20:19수정 2015-10-23 18:07

일상만화의 장점을 살린 <모두에게 완자가>에서 완자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레즈비언이 되었다.
일상만화의 장점을 살린 <모두에게 완자가>에서 완자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레즈비언이 되었다.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모두에게 완자가>의 완자 작가
자의식 과잉 아닐까? <모두에게 완자가>의 첫 화, 작가이자 주인공인 완자가 자신의 동성애인인 야부에게 “나 만화로 세상을 바꿔볼 거야”라고 말할 때 들었던 생각이다. 레즈비언으로서 본인의 연애 이야기를 가장 대중적인 플랫폼인 네이버 웹툰에 연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유의미한 일이었지만 거창한 가치를 작품 안에서 스스로 부여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 만화 안에서 얼마나 깊은 성찰을 보여줄 수 있는지 두고 보자라는 꼬인 시선으로 초기의 조금 밋밋한 에피소드들을 보며, 혹 성소수자의 연애라는 독특한 소재로 만화가의 재능을 대체하는 건 아닌지 의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틀린 건 내 쪽이었다.

물론 완자가 이론적으로 무장한 레즈비언 전사는 아닐지 모른다. 대신 그는 스스로 경험한 일들에 대해 곰곰이 곱씹고 말하는 제법 괜찮은 일상만화가다. 가령 완자의 호모포비아 친구가 완자의 애인 야부에게 “네가 놔주면 완자는 다른 남자 만나 멀쩡히 살 수 있다(완자는 양성애자다)”고 말해 야부가 화를 내자 완자는 “사람마다 개념이 다른 거”라고 변명해준다. 이건 명백히 틀렸다. 하지만 화를 내고 떠난 야부를 보며 ‘네가 아닌 사람과 만나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야부는 얼마나 속상했을’지를 깨닫고, 결과적으로 만화 안에서 단순히 서로 개념이 다르다는 말로 정당화할 수 없는 호모포비아의 무례함에 대해 작지만 구체적인 사례로 독자를 납득시킨다. 이것은 잘 만든 일상만화의 힘이다. 어머니가 사준 쿠키앤크림 아이스크림만 평생 먹다가 “네가 좋아하는 게 그 맛이 맞느냐”는 야부의 질문으로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연애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정의이기도 했지만 또한 중요한 건 이성애냐 동성애냐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사랑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하여 돌이켜보건대, 앞서 인용한 세상을 바꾸겠단 완자의 말이 거창한 게 아니라, 내가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었다. 완자가 만화를 통해 시도하는 것은 아주 느릿한 변화다. 한국의 엘지비티(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운동이 <모두에게 완자가> 이전과 이후로 나뉘지지는 않겠지만 그 운동의 한 지류로서 대중에게 조금씩 스며든 물줄기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번주 마지막 화에서 공개한, 커밍아웃을 했더니 상대가 <모두에게 완자가> 독자라 분위기가 좋게 흘렀다는 친구의 이야기는 아주 건강한 자기 자랑이다. 완자는 이론적으로 가장 탁월하거나 치열한 레즈비언은 아닐지 모르지만, 가장 친숙한 레즈비언이 되었다. 꼭 호모포비아가 아니더라도 동성애자에 대해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레즈비언에게 느끼는 친숙함이란 놀라운 성과다. 인정해야겠다. 그는 만화로 세상을 바꿨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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