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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세상에는 천재만 인기를 누리는 게 아니다

등록 2015-03-27 19:46수정 2015-10-23 18:06

절벽 한가운데 고립된 인간을 그린 <절벽귀>에서 단편작가로서 오성대 작가의 재능이 발견됐다.
절벽 한가운데 고립된 인간을 그린 <절벽귀>에서 단편작가로서 오성대 작가의 재능이 발견됐다.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소설가 J>, <절벽귀>, <기기괴괴>의 오성대 작가
웹툰이라는 플랫폼이 듣도 보도 못한 앙팡테리블들을 얼마나 많이 콘텐츠 시장으로 불러왔는지 이 코너를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항상 모든 작가들이 처음부터 천재성을 드러내며 자신의 세계를 확립한 건 아니다. <소설가 J>, <기기괴괴>의 오성대 작가처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이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개발해가는 작가들 역시 존재한다. 조금 속물적인 기준이지만, 그가 현재 연재 중인 <기기괴괴>가 네이버 목요 웹툰 중 3위라는 건 그의 현재 인기를 파악하기에 가장 쉬운 지표다. 공포라는 장르적 성격이나, 3~8화 사이의 단편들을 옴니버스로 연재하는 방식이 웹툰 안에서 그리 흔한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흥미로울 정도의 인기다.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와 방식을 찾아낸 작가가 비로소 누리는 인기라고 보는 게 적절할 듯하다.

성급한 생각일 수 있지만, 역시 옴니버스 공포 연작 <금요일>의 배진수 작가, <옥수역 귀신>의 호랑 작가 등을 보고 있으면 혹 공포에 능한 작가는 단편에서 더 빛을 발하는 건 아닐까 싶다. 호러의 조상님 에드거 앨런 포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성대 작가 역시 그러한데, 그의 데뷔작 <소설가 J>는 재능 있는 문학청년이 죽음 앞에서 자신의 정신을 데이터로 옮겨 컴퓨터 안에서 창작을 계속한다는 흥미로운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연재 중 추가한 다른 설정들을 미처 풀어내지 못하고 급하게 마무리된 바 있다. 이후 그린 연애 만화 <봉봉오쇼콜라>는 귀여운 작품이었지만 여전히 작가의 장점과 정체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았다. 그러다 과거 아마추어 시절에 그린 단편 <절벽귀>를 역시 단편의 형태로 연재하며 그 어떤 장편 연재 때보다 큰 호응을 얻어냈다. 절벽 한가운데 고립된 주인공의 막막함과, 친구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죄책감을 밀도 있게 풀어낸 이 작품은 공포물로서 또 단편으로서의 미덕을 갖춘 작품이다. 판권이 팔려 공포 옴니버스 영화 중 한 편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절벽귀>의 성공 이후 그가 공포 단편 옴니버스인 <기기괴괴> 연재를 결정한 건 그래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장편에 재능이 없어서 단편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편에는 단편의 재능이 필요하다. <절벽귀>에서 그러하듯, 그는 어떤 극단적 상황에 캐릭터를 몰아넣고 그 두려운 감정을 높은 밀도로 그려낸다. <기기괴괴> 첫 단편인 ‘저주받은 갤러리’는 어떻게 꿈을 통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애써 설명하기보다는, 전제된 상황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미쳐가는지에 집중해 독자가 몰입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요컨대 그는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잘하는 걸 찾아내 인기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얻었다. 어쩌면 이러한 사례야말로 갑자기 튀어나오는 천재의 미담보다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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