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우리 정부는 제대로 국민적 합의도 형성하지 않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즉 한-미 에프티에이를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결정하였다. 특히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인들이나 농민들의 반발이 심하다. 정부를 비롯하여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저항을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면서 국익을 위해 영화인이나 농민들이 희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체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도 된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바로 이 때문에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구미의 자유주의 경제학은, 아무리 다수가 이익을 보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손해를 보는 정책은 택하면 안 된다는 ‘파레토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무도 손해보지 않는 정책이란 흔치 않기 때문에 파레토 원칙은 구조적으로 기존 질서를 옹호하게 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절충안으로 ‘보상의 원리’를 사용한다. 이들은 설사 어떤 정책으로 손해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익의 총량이 손해의 총량보다 많다면 그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 경우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손해 본 사람들을 완전히 보상해 준다면, 결국 손해 보는 사람 없이 일부 사람들이라도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보상의 원리를 내걸고 정책을 채택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전체를 위해 일부를 희생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취약부분에 대한 보상대책이 없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바로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에 더해 우리는 손해 보는 집단의 저항을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누가 남들보다 더 이기적인가 아닌가는 그 사람이 처한 처지와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홍수가 날 것 같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강둑에 모래주머니를 쌓는데, 남들은 1시간에 100개를 나르는 동안 50개만 나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남들보다 더 이기적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보통 어른인데 남들의 반만 일을 했다면 이기적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사람이 원래는 25개 정도밖에 나를 기운이 없는 어린이나 노인이지만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일을 하여 50개를 나른 것이라면 그는 이기적이기는커녕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자기들은 관세 보호에 수출 보조금까지 받아가며 성장한 제조업체들이 수출 좀 더 하겠다고 아직도 스크린쿼터를 통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유치산업’인 영화산업에 그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제조업체들의 집단 이기주의가 아닌가? 다른 국민들이 식비 좀 아끼겠다고 농민에게 생계를 포기하라는 것은 다수의 조그만 이익을 위해 소수가 엄청난 희생을 해도 좋다는 다수의 집단 이기주의, 더 나아가 전체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가장 큰 문제는, 백보 양보하여 전체의 이익을 위해 국민 일부가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전체의 이익’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지지자들은, 이 협정이 장기적으로 국민소득을 2% 증가시키고(일부에서 오해하는 것처럼 ‘경제성장률의 2% 포인트 증가’가 결코 아니다), 10만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를 흔히 인용한다. 그러나 국민소득 2%라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얼마 안 되는 숫자다.
그나마 이 숫자는, 자유무역협정에 의해 무역이 늘고 그에 따라 소득이 늘면 투자가 늘어나 소득과 고용이 더 늘어난다는(실현이 보장되지 않은) 중장기적 파급효과를 전제한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는 이런 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국민소득을 (거의 통계 오차 수준인) 0.42%밖에 증가시키지 못하고, 일자리는 도리어 8만5천개 정도 줄이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 숫자마저도 농업, 서비스업, 일부 제조업 등 취약분야의 구조조정 대책이 확실히 마련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보고서 자체도 “피해 예상부문에 대한 개방전략과 국내 산업정책이 효과적으로 연계되지 못하는 경우 국가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지금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다수의 확실치도 않은 조그만 이익을 위해 소수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한다는 여당과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경제관료들이 이런 전체주의적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그나마 이 숫자는, 자유무역협정에 의해 무역이 늘고 그에 따라 소득이 늘면 투자가 늘어나 소득과 고용이 더 늘어난다는(실현이 보장되지 않은) 중장기적 파급효과를 전제한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는 이런 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국민소득을 (거의 통계 오차 수준인) 0.42%밖에 증가시키지 못하고, 일자리는 도리어 8만5천개 정도 줄이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 숫자마저도 농업, 서비스업, 일부 제조업 등 취약분야의 구조조정 대책이 확실히 마련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보고서 자체도 “피해 예상부문에 대한 개방전략과 국내 산업정책이 효과적으로 연계되지 못하는 경우 국가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지금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다수의 확실치도 않은 조그만 이익을 위해 소수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한다는 여당과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경제관료들이 이런 전체주의적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