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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신념을 가지면 쉽게 꺾이지 않는다

등록 2013-06-28 19:31수정 2015-10-23 18:57

박용제 작가의 <갓 오브 하이스쿨>에서 진모리 대 박일표의 대결. 발차기가 불을 뿜는다.  웹툰 갈무리
박용제 작가의 <갓 오브 하이스쿨>에서 진모리 대 박일표의 대결. 발차기가 불을 뿜는다.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네비게이터
제목을 〈THE(더) 쎈놈〉으로 지었으면 어땠을까. 박용제 작가의 데뷔작 <쎈놈>을 다시 보며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쎈놈>의 주인공 강태엽은 각 지역을 돌며 최고의 주먹만 찾아 꺾지만, 정작 “짱이니 보스니 그런 낯간지러운 말로 부르지 마라, 누구 위에 올라서는 거 싫다”며 자신을 그냥 ‘쎈놈’이라 칭한다. <쎈놈>이 학원 폭력물이 아닌 학원 액션물인 건 그 때문이다. 강태엽 이외에도 박한마, 진정식 등 일당백의 주먹이 등장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완력으로써 권력을 행사하고 군림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정정당당히 주먹을 맞대고 모든 걸 쏟아낸 뒤 결과에 승복하는 열정과 후련함만이 남는다.

그런데 재밌게도, 주먹으로 서열을 매기기 싫다던 강태엽은 정작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 패배를 경험하면 기어코 다시 덤벼들어 승리를 쟁취한다. 요컨대 권력에는 초연하되 주먹싸움에서는 일등이 되어야 한다는 것, 새로운 ‘쎈놈’들을 만나 패배를 경험할 때마다 ‘더 쎈놈’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강태엽의 방식이다. 이것은 모순일까. 중요한 건 강태엽이 주먹 세계의 일등이 되느냐가 아니다. 그가 넘어서려 하는 것은 눈앞의 새로운 적이 아닌 자신의 한계다. 그가 원하는 건 박한마 위의 강태엽이 아닌, 그냥 더 강해진 자신이다. 체격이나 재능에선 진정식, 최성진보다 한참 부족한 그가 끊임없는 극복의 과정을 통해 그들을 넘어설 때, 비로소 <쎈놈>에서의 싸움은 풋내 나는 힘자랑을 넘어 자기 극복의 서사가 될 수 있다.

박용제 작가의 현재 연재작 <갓 오브 하이스쿨>의 한계 없는 질주감은 여기서 나온다. 스스로 ‘허구 100퍼센트, 막장 액션의 끝’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정말 <갓 오브 하이스쿨>의 액션에는 한계가 없다. 극진공수도 대 리뉴얼 태권도의 대결은 어느새 장풍이 오가고, 주인공 진모리가 제천대성으로 각성해 여의봉을 휘두르자 해일이 발생한다. 이런 허구적 상상력과 박용제 작가 특유의 빠르고 화려한 액션 시퀀스가 주는 쾌감 자체도 상당하지만, 무엇보다 이 거대한 스케일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진모리의 성장 서사와 궤를 같이한다. 더 강한 적이 나올수록, 진모리가 더 강해질수록, 액션의 스케일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간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다. 마음만 굳게 먹는다면 어떤 어마무지한 시련이 오더라도 다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 절망적일 만큼 강한 적 앞에서도 신념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은 이렇게 액션의 크기로 형상화된다. 리뉴얼 태권도가 시전자의 몸에 무리를 주는 약점이 있다는 말에 진모리는 태연하게 답한다. “앞으로 단련하면 돼.” 박한마의 발차기가, 진모리의 청룡의 각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떠나 박용제 작가의 작품이 판타지라면 그래서다. 신념을 가진 주먹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는 판타지. 물론 이것은 정말 만화 같은 이야기다. 그리고 그는 만화 같은 이야기를 만화로 만화답게 풀어내고 있다. 만화가에게 이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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