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민 작가의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에서 쩌렁쩌렁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김건호. 이 정도 액션은 이현민 작가의 작품에서 기본이다.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의 이현민 작가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의 이현민 작가
만약 <미생>의 장그래가 ‘질풍기획’의 일원이 되어 광고주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면, 혹은 ‘풍운전자’ 신입 공채 면접을 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현민 작가의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질풍기획)과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나목들)에서 그려지는 회사 생활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장그래는 ‘원 인터내셔널’과 영업3팀이라는 합리적 시스템 안에서 정갈한 논리와 통찰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하지만 <질풍기획>에서 광고기획사를 대하는 광고주들의 태도와 <나목들>에서 공채 지원자를 걸러내는 풍운전자의 기준은 종종 비합리적이다 못해 비윤리적이다. 과연 이곳에서도 장그래는 특유의 차분한 표정을 지킬 수 있을까.
<질풍기획>과 <나목들>에서 작가 스스로 열혈 개그라 칭할 만큼 캐릭터들의 막무가내에 가까운 과격한 액션이 벌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질풍기획의 막내 김병철은 사내 프레젠테이션 시간에 맞춰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전달하느라 빌딩과 빌딩 사이를 장대로 뛰어넘고, 송치삼은 ‘이레이저 피스트’라는 필살기로 벽을 뚫어 화가 난 광고주들의 기억을 삭제한다. 국내 최고 기업 풍운전자 영업팀 면접 자리에서 수많은 자격증을 가진 박재천은 그 모든 걸 잘할 수 있다는 ‘차장급 자신감’을 어필하고, 자사 제품 홍보 프레젠테이션 과제에서 김건호는 “리스크를 두려워하는 자는 최고의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사자후를 광선과 함께 토해내며 면접관들의 마음의 벽을 부순다. ‘퇴근 전 지적하고 아침에 확인하는 광고주’(<질풍기획>)와 단지 여성 면접자라는 이유로 발언조차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면접(<나목들>)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그토록 열혈을 불태울 수밖에 없다.
물론 만화에서도 세상은 무조건적인 돌진과 개그 센스로 돌파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게 아니다. 질풍기획 제3기획팀은 디제이 푸드의 정석구 과장과 함께 디제이 푸드의 ‘풋돈 소시지’의 비위생적 생산을 고발하지만 오히려 괘씸죄 때문에 광고주들로부터 대규모 계약 해지를 당하고, 풍운전자 면접생 중 가장 탁월한 능력과 태도를 갖춘 황태룡은 사장의 지시로 합격이 번복된
다. 다시 한번 열혈을 불태운 주인공들의 역동적인 액션이 웃음을 넘어 윤리적 당위성까지 획득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열혈 개그와 차가운 현실, 그리고 열혈의 역습은 일종의 정반합을 이루며 주인공들의 꿈과 열정을 긍정한다. 이 요란한 활극의 끝은 그래서 어마어마한 성공이 아닌, 자기 자리를 찾거나(<질풍기획>),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나목들>) 것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박력 있는 액션에 비하면 너무 소박한 결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바치라는 성공신화가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위해 아득바득 힘내서 싸워보자는 응원의 한마디가 아닐까. 나 자신을 위해 불타오르는 걸 좀체 용납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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