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두고 회자되는 <노블레스>의 ‘꿇어라’ 장면.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노블레스>의 손제호·이광수 작가
<노블레스>의 손제호·이광수 작가
‘먼치킨류’는 어떻게 ‘존나세’의 함정을 피할 수 있는가. 손제호(글), 이광수(그림) 작가의 웹툰 <노블레스>는 이 엉뚱하지만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먼치킨류’란 주인공이 처음부터 절대적인 힘을 가진 설정에서 출발하는 장르로, 주인공이 수많은 시련을 거치고 더 강한 적들을 격파하며 최고의 위치에 올라가는 성장물의 대척점에 있다. 때문에 주인공이 난관을 극복하며 만들어가는 긴장감은 덜하지만 대신 강력한 힘을 가진 주인공이 그 힘을 폭발시켜 악역을 말살할 때의 카타르시스는 굉장하다. <노블레스> 속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존재들로 표현되는 루케도니아의 뱀파이어 가주조차 주인공 라이의 힘 앞에 경외감을 표하는 걸 떠올릴 때 <노블레스>는 명백한 ‘먼치킨류’다.
‘먼치킨류’는 성장물과 달리 장기적 동력이 부족하다. 주인공의 일방적인 학살극은 자극적인 재미는 있을지언정 일회성으로 쉽게 휘발된다. 앞서 인용한 ‘존나세’는 얼굴도 잘생기고 싸움도 잘하는 유치한 인터넷 소설의 주인공인데 사실 모든 ‘먼치킨류’의 주인공은 ‘존나세’가 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때문에 서사적으로 누적된 감정을 주인공의 각성과 함께 폭발시키는 구성이 함께할 때 ‘먼치킨류’는 독자를 몰입시키고 이야기의 힘을 얻는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노블레스>의 소위 ‘꿇어라’ 장면이 중요한 건 그래서다. 소설 <비커즈>에서 서연이라는 월등한 주인공을 다뤘던 손제호 작가는 <노블레스>에선 라이가 현세의 고등학교에서 겪는 평범한 일상에 집중한다. 몇 백 년의 수면기 이후에 나왔기에 라면을 먹고 온라인 게임을 하는 모든 일상이 라이에겐 신기한 것이며, 그의 행동은 어설프고 엉뚱하다. 이처럼 라이를 친근한 인물로 납득시키고 또한 그가 신우나 익한 같은 아이들과 쌓아가는 일상을 보여주었기에 아이들을 위기에 몰아넣은 악역 제이크에게 숨겨놓은 힘과 분노를 개방하며 “꿇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라고 말했을 때 어떤 과함 없이 캐릭터의 위엄과 매력만이 오롯이 드러난다.
<노블레스>가 정말 빛나는 건 오히려 라이가 보여준 힘의 해방 이후다. 사실 이 작품은 매 시즌, 지난 시즌보다 강한 적이 등장하고 최종적으로 라이가 판을 정리하는 플롯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극적 긴장감이 부여되는 건, 라이가 힘을 발휘할 때마다 생명이 소모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기 주위의 소중한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쓰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운 ‘노블레스’의 품격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오블리주’를 통해 완성되며 생명의 소모라는 치명적 약점이 오히려 존재를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역설을 낳는다. 불완전함을 통한 완전함, 이것이야말로 여타 ‘먼치킨 류’가 주목해야 할 점이 아닐까.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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