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맨>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열혈 초등학교>, <전학생은 외계인> 등의 귀귀 작가
<열혈 초등학교>, <전학생은 외계인> 등의 귀귀 작가
얼마 전 해외의 어떤 행사에 소개할 웹툰의 소개글을 쓴 적이 있다. 영어로 번역할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했는데 특히 ‘병맛’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이 신조어는 그 뜻이 명확하지 않으면서도 웹툰이라는 매체 안에서 거의 하나의 독립된 장르처럼 사용되는 단어다. 가령 같은 개그물이라 해도 김규삼 작가나 신영우 작가의 그것과 달리 조석, 이말년 작가는 ‘병맛’으로 따로 분류되는 식이다. 하지만 김진태 작가를 롤모델로 삼는 이말년 작가나 갈수록 시트콤적인 흐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조석 작가는 본인의 스타일을 지키면서 좀더 보편적 개그에 다가가는 듯하다. 이들과 함께 소위 ‘병맛’ 트로이카를 만들었던 귀귀 작가를 제외한다면.
사실 귀귀 작가가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본인의 작품 때문이라기보다는 야후코리아에 연재중이던 <열혈 초등학교>의 해악성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 때문이었다. 당시 보수 신문과 국가기관이 만든 검열의 카르텔에 대해선 여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이 사태에서 알 수 있듯 귀귀 작가의 작품은 여타 ‘병맛’류 중에서도 상당히 불편한 요소가 많은 편이다. <열혈 초등학교>에서 왕따 이규창은 매일 피가 터지도록 반 아이들에게 맞고, 개그 액션물인 <정열맨>에서도 게이 코드 등이 조금은 선정적인 방식으로 활용됐다. 현재 네이트에 연재중인 <전학생은 외계인>은 그 종합편에 가까울 정도로 인종, 장애, 성에 대한 온갖 차별 코드를 개그의 소재로 활용한다. 가령 전학생 알리엔이 외계인인 걸 증명하기 위해 손가락 개수가 인간과 다르다는 걸 지적하자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그러면 어떡하느냐고 혼내는 식이다. 작가 스스로 이들 차별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품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일종의 죄책감과 함께 귀귀의 만화를 ‘길티플레저’로 즐길 수 있는 건 그의 작품이 철저히 ‘병맛’이라는 지향점을 향하기 때문이다. <김치맨>(사진)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솔로라는 이유로 커플에게 시비를 걸고 여자를 때리는 건 분명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여기엔 현실의 기준에서 절대 올바르지 못한 이 모든 에피소드들이 정말로 옳지 않고 실제로 일어나면 ‘병신’(장애인에 대한 비하의 개념으로서가 아닌) 같은 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요컨대 ‘병맛’ 만화를 즐기는 건 이러한 암묵적 합의와 규칙 안에서 독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자를 때리는 행위를 즐기고 학습하는 게 아니라 그 개연성 없는 행동의 황당함과 말초적 자극을 즐기고 스크롤이 끝나면 머리에서 지우는 식이다. 그래서 귀귀 작가에 대해 말하는 건 그의 관점에 동의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닌 그 가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표현의 허용 범위라는 건 이처럼 표현 자체가 아닌 거기서 의미를 받아들이는 독자와의 연계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의 심의는 이걸 종종 잊으니 문제지만.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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