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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웹툰은 강풀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

등록 2013-10-11 19:41수정 2015-10-23 18:51

강풀의 현재 연재작 <마녀>. 멜로물이지만 미스터리적인 멀티 플롯이 돋보인다. 웹툰 갈무리
강풀의 현재 연재작 <마녀>. 멜로물이지만 미스터리적인 멀티 플롯이 돋보인다.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순정만화>, <아파트>의 강풀 작가
태초에 강풀이 있었다. 언젠가 한국 웹툰 시장 역사를 정리하는 책이 나온다면 그 첫 문장은 이렇지 않을까. 강도하, 양영순 등 1세대 그룹과 함께 아직 미개척지인 웹툰을 개척한 선구자이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 대중적인 히트 작품이 없는 웹툰 시장에 <순정만화>와 <아파트> 같은 메가히트 작품을 내놓았지만 그 때문만도 아니다. 기존 출판 만화의 성공 공식과는 전혀 다른 선례를 만들어 자신을 표현할 매체를 찾던 수많은 이야기꾼들을 웹툰 시장으로 불러들여 중흥시킨 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업적일 것이다.

강풀 이전에도 웹을 지면 대신 사용하는 만화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말 그대로 지면을 대신하는 것이었다면 강풀은 웹 특유의 자유로움을 좀더 활용한다. 대학 시절 대자보를 그리며 만화 실력을 닦은 그는 웹툰에서도 마치 긴 대자보 만화를 그리듯 종 스크롤에 맞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웹에 특화된 새 시대의 연출을 보여줬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면에선 같은 시기에 <위대한 캣츠비>를 통해 이후 세대인 하일권 등에게 영향을 미친 강도하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세련된 스크롤 연출이 더 돋보일지 모른다. 다만 강풀은 탁월한 작화나 사각 프레임에 특화된 기존의 만화 연출 없이도 스크롤을 통해 한 호흡으로 쭉 읽히는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 웹툰이라는 매체의 힘이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 증명했다. 동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라는 타이틀과 웹툰의 조상님이라는 타이틀은 그렇게 조우한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두 번째 장편인 <아파트>에서부터 완벽히 자리잡아 현재 연재작인 <마녀>까지 이어지는 멀티 플롯은 그래서 중요하다. 멜로부터 미스터리, 공포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다룬 그의 이야기를 하나의 관점으로 정리하긴 어렵다. 다만 그의 작품 대부분은 저마다의 비밀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하나 이상의 에피소드를 할애한 뒤, 그것이 한 줄기로 모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많은 창작자가 멀티 플롯 자체에 매몰되어 이야기의 진행을 놓친다면, 강풀은 각 인물의 사연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순간 솜씨 좋게 가속 페달을 밟는다. 그 끝에 가장 짜릿한 결말이 준비된 건 물론이다. 1990년대 중반의 수많은 출판 인기작들 중 상당수가 제대로 된 결말을 맺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났던 것을 떠올릴 때, 강풀의 만화는 다시 한 번 잘 짜인 이야기가 창작물의 기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현재 웹툰의 중흥은, 이처럼 가장 기본으로 돌아갔기에 가능한 일이다. 분명 어떤 분야든 단 한 명의 천재가 판을 바꾸진 않는다. 다만 쌓이고 쌓인 여러 계기들을 눈에 보이게 형태로 폭발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있을 수는 있다. 강풀의 등장은 바로 그 하나의 계기이며 우리는 지금 그것이 만들어낸 연쇄효과 속에 들어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이야기의 홍수 속에.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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