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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담담하게 그리는 희로애락… 서서히 열리는 마음

등록 2013-10-18 19:23수정 2015-10-23 18:50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신과 함께>, <무한동력>의 주호민 작가
뻥치시네. 주호민 작가의 <짬> 마지막 편에서 막 전역한 작가 본인이 ‘왜 하나도 기쁘지 않지?’라고 독백할 때 든 생각이다. 역대 최고 수준의 리얼리티에도 불구하고 군대의 일상을 긍정적이고 명랑하게 그리던 작가의 시선에 대해 한번도 불편하거나 의심한 적 없지만, 그래도 전역을 아쉬워하는 건 심한 과장이거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꾸준히 주호민 작가가 내놓은 <무한동력>, <신과 함께> 3부작을 보기 전까지는.

주호민 작가의 나이 즈음에 울분으로 가득 찬 작품 <아후>를 그렸던 윤태호 작가가 “어찌 그리 똘똘한지”라 찬사를 보낼 정도로 주호민 작가의 작품은 <신과 함께> ‘이승 편’을 제외하면 언제나 담담한 톤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그려낸다. 자신의 갈 곳을 아직 정하지 못한 유예된 청춘들과 무모해 보이지만 간절히 원하는 꿈을 위해 무한동력을 만드는 주인집 아저씨의 이야기를 그린 <무한동력>의 인물들은 격한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는다. 취업이 안돼서 불안하지만 미국 드라마 <로스트> 한 시즌을 밤새워 보고, 무한동력 실험이 실패해도 다음을 기약하며 크게 낙담하지 않는다. 감정의 기복을 느끼는 건 독자들이다. 여전히 담담한 톤으로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같은 대사를 읊을 때, 현실 속에서 외면당하던 꿈이라는 가치는 비로소 당위를 얻고, 독자에게 나는 혹은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는 위안을 준다. 착하고 싫은 소리 못해 이승에서는 손해만 봤던 김자홍이 저승이라는 심판의 공간에서 그 덕을 인정받는 모습을 그린 <신과 함께> ‘저승 편’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말한 <신과 함께> ‘이승 편’이 그의 작품 안에서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면 그래서일 것이다. <짬>이 군대라는 공간에서도 사람의 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무한동력>이 유예되었지만 멈추지 않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신과 함께> ‘저승 편’이 지금 당장 보상받지 못한 선한 행동이 좋은 업이 될 거라는 믿음을 보여준다면, <신과 함께> ‘이승 편’은 현실의 극단적 폭력 앞에 과연 당위적 가치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힘겨운 탐구에 가깝다. 가택신조차 소멸할 수밖에 없는 재개발 사업 앞에서 주호민 작가의 인물들도 설운 울음과 힘겨운 한숨을 감추지 못한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하지만 그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기보다는 자신의 폭력에 죄책감을 느끼는 여린 청년을 통해, 폭력의 연결고리에 대한 독자의 각성을 돕는다. 그의 작품이 소위 ‘치유계’로 분류되는 건 그 때문이다. 담담하되 울림을 주고, 강요하기보단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열고 믿어보련다. 전역이 기쁘지만은 않았다는 마음도, 내 유부남 친구 놈들은 그렇게 힘들다는 육아가 너무나 행복하다는 <셋이서 쑥>의 자랑질도.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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