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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눈을 버리고 마음을 그리다

등록 2013-12-06 19:38수정 2015-10-23 18:46

<수업시간 그녀>에서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받는 장면. 이 한 장면만으로도 주인공의 설렘이 느껴진다.  웹툰 갈무리
<수업시간 그녀>에서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받는 장면. 이 한 장면만으로도 주인공의 설렘이 느껴진다.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수업시간 그녀>의 박수봉 작가
연말이다. 세상은 뒤숭숭할지언정 케이블 채널에서 <나 홀로 집에> 시리즈를 틀어주며 거리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는 연말. 이즈음이면 한해를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이런저런 시상식이 열리는데 12월을 맞아 ‘웹툰 내비게이터’도 4주 동안 4개 부문을 정해 시상해보려 한다. 그 첫번째 부문은 ‘올해의 발견’으로 수상자는 네이버 웹툰 <수업시간 그녀>의 박수봉 작가다.

창작에 있어 천재라는 말만큼 오남용되는 말도 없지만, 박수봉 작가의 경우 천재라는 말이 굉장히 어울리는 배경을 지닌 게 사실이다. 어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엘리트에, 포털 아마추어 게시판을 거치지 않고 본인 블로그에 연재한 것만으로 정식 연재가 결정된 은둔 고수. 그의 작품에서 정말 어떤 천재성이 느껴진다면 한 컷 한 컷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탁월한 연출 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는 유독 인물의 눈을 그리지 않는데, 단순히 고집이나 개성이라 말하기에 이것은 굉장한 핸디캡이다. <노블레스>의 이광수 작가 같은 이들도 감정 표현에 가장 중요한 도구로 인물의 눈을 꼽을 정도로, 만화에서야말로 ‘몸이 열냥이면 눈이 아홉냥’이다. 박수봉 작가는 눈을 이용해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간결한 선으로 표현한 선명한 제스처로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한 컷 안에 드러낸다. 가령 코코아 캔을 쥐고 있는 손으로 억누르는 감정을 보여주거나, 주인공의 눈에 비친 여성의 목선이나 뒷모습을 통해 주인공의 설렘을 표현하는 식이다. 그가 군대에 가기 전 트위터에서 주제어를 받아 그렸던 한 컷 만화에서 이러한 표현력은 더욱 도드라진다.

그가 좋은 만화가라면 이러한 예술적인 표현력으로 좋은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수업시간 그녀>는 젊은 날의 풋풋한 감정을 담아낸다는 것 때문에 종종 영화 <건축학개론>과도 비교되는데, 후자가 그러하듯 <수업시간 그녀> 역시 억지스러운 설정이나 불타는 연애 없이도 짝사랑이 어떻게 일생일대의 대사건으로 기억되는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작은 엇갈림이 서로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는지 차근차근 풀어낸다. 이야기의 흐름을 엮어서 섬세한 감정의 묘사로 촘촘히 이은 건 물론이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비록 주인공이 좋아하던 그녀가 그를 ‘호구’로 여겼다는 장면에서 짧은 치마와 담배 같은 ‘나쁜 년’의 클리셰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런 전형성이 아쉬운 건 그만큼 이 젊은 작가가 <수업시간 그녀>에서 보여준 것들이 전형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스스로도 프랑스의 천재 만화가 바스티앙 비베스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림체나 연출 등 많은 부분에서 실제로 비베스를 연상케 하는 이 젊은 유망주는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그 안에 품은 가능성을 모두 드러낼 수만 있다면 그는 ‘올해의 발견’이 아닌 ‘한국 만화의 발견’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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