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가 되고픈 공주의 장단을 맞춰주는 <히어로메이커> 인물들.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히어로메이커>의 빤스 작가
<히어로메이커>의 빤스 작가
웹툰이 나온 지도 10여년이 지나고 지난 1~2년을 기점으로 신규 독자가 엄청나게 유입되면서, 나름 웹툰을 초기부터 보아온 독자들의 소위 ‘부심’(쓸데없는 자부심을 이르는 말)도 점점 커지는 듯하다. 하여 혹시라도 다른 이들과 ‘부심’ 대결을 펼치게 될 웹툰 독자를 위한 간단한 팁을 알려주겠다. 현재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작품 중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된 건 어떤 것일까. 정답은 빤스 작가의 <히어로메이커>다. 2006년 11월27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하지만 현재에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진 못하기 때문에 초기 웹툰 독자가 아니면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끔 몇몇 이들이 ‘네이버 공무원’이라는 식으로 장기 연재작을 비하할 때 가장 많은 화살을 맞는 게 <히어로메이커>인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식의 부당한 평가를 받을 작품도, 단지 웹툰 ‘부심’ 테스트를 위한 장치로 소모될 수준의 웹툰도 아니다.
제목처럼 이 이야기를 요약하는 주제는 영웅 만들기다. 여타 소년만화처럼 주인공이 직접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영웅소설에 꽂힌 세날 왕국의 라나 공주가 그 누군가이고, 주인공들은 세날 최고의 기사 윌리엄과 최고의 도둑 벤 등 왕국을 대표하는 초호화 멤버들이다. 소설 같은 모험을 꿈꾸는 공주를 위해 주인공들이 연극을 꾸민다는 설정은 판타지 장르의 문법을 비튼다는 점에서 신선했고, 초기 웹툰 시장의 주류였던 짧은 호흡의 개그만화에도 잘 맞아떨어졌다. 흥미로운 건, 7년 넘게 연재된 지금, <히어로메이커>는 그 어떤 판타지 만화보다 전통적인 영웅 서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뛰어난 능력으로 하찮은 일에 불려나가 개그 캐릭터가 될 수밖에 없던 주인공들은 어느새 제자리를 찾아 왕국의 영웅들이 되었고, 작품은 다음 세대인 리스토 왕자를 성군으로 키우는 ‘킹메이커’로 새 시즌을 시작했다. 분명 지금의 <히어로메이커>는 처음의 그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작품이 됐다.
개그만화가가 장기 연재를 위해 무리수를 둔다는 비방에 대해서는 그래서 동의할 수 없다. 작가는 기본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거기서 자연스레 파생되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장기 연재를 위해 개그만화를 억지로 진지하게 끌고 간 게 아니라, 장기 연재를 통한 스토리의 변곡점을 통해 개그가 진지한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장르가 변한 현재의 <히어로메이커>는 무리수가 아니라 오랜 연재를 통해 비로소 닿을 수 있던 새 영토다. 소원을 들어주는 여의주를 찾아 떠나는 모험기였던 <드래곤볼>이 어느 순간 지상 최대의 격투만화가 되었던 것처럼, 장기 연재 만화의 확장성은 종종 독자를 신세계로 데려다 준다. 아마도 이것이 네이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작품의 진정한 위엄일 것이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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