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드 가문을 없애는 목적을 가진 슬레이어로 돌아온 <신의 탑>의 주인공 밤.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원·나·블’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 만화잡지인 <소년 점프>의 3대 히트 만화이자 장기 연재작인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를 이르는 말로 현대 소년 만화의 전형을 대표하는 조어다.
이에 한국의 독자들도 ‘신·노·갓’이라는 말을 만들어 웹툰 플랫폼에서 새롭게 꽃핀 한국 소년 만화들을 칭하기 시작했는데, 그 주역들은 <신의 탑>, <노블레스>, <갓 오브 하이스쿨>이다. 업데이트 요일 순서라 큰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신의 탑>이 ‘신·노·갓’의 첫번째로 자리잡은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이들 세 작품 중 <신의 탑>이야말로 ‘원·나·블’의 전통으로부터 가장 먼 작품이기 때문이다.
<신의 탑>의 경우 ‘원·나·블’보다는 역시 <소년 점프>의 히트 작가인 도가시 요시히로의 <헌터×헌터>와 종종 비교된다. 다양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능력에 대한 약점과 상성을 파악해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헌터×헌터>와 마찬가지로 <신의 탑>의 에스아이유(SIU) 작가 역시 탑이라는 가상의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운 신수라는 물질을 가정해, 이 신수를 이용해 싸우는 수많은 방식과 능력, 그리고 그에 따른 전술적 포지션을 세세하게 설정한다.
탑을 올라가기 위해 각 층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주인공들은 각 시험의 주제에 맞춰 승리하는 법을 고민하고, 때론 이기기 위해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거나 속인다. 가령 신수를 이용하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근력은 부족한 주인공 밤을 잡기 위해 상대편에선 신수를 봉인하는 반지를 쓰는 식이다. 주인공 밤은 순수한 소년이지만,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파트너인 쿤은 이기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 안티히어로인 건 우연이 아니다.
여기서 <신의 탑>이란 작품만큼 흥미로운 건, 이처럼 복잡해서 자칫 소년 만화 특유의 속도감을 떨어뜨릴 수 있는 설정들을 에스아이유 작가가 소화하는 방식이다.
물론 그 역시 여타 실력 있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작품의 세계관과 각 시험의 설정을 설명이 아닌 스토리에 녹여낼 줄 알지만, 동시에 탑의 역사와 아직 등장하지 않은 탑 안의 강자들에 대한 정보, 아이템, 시험의 설정에 대해서는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독자와 공유한다.
이들 정보는 마치 마블 유니버스에 대한 이야기처럼 그 자체로 작품 팬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콘텐츠가 되는 동시에 <신의 탑>이라는 복잡한 이야기를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가이드북이 된다. 덕분에 에스아이유 작가는 작품 안에서는 최대한 설명을 자제하고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신의 탑>처럼 전통적 소년 만화의 전통에서 살짝 비껴난 작품이 기존 문법에 익숙한 독자를 끌어오기에는 상당히 효율적인 방식이다. 이처럼 인터넷 플랫폼은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드는 동시에 작가가 만화로 소통하는 방식에도 새로운 힌트를 주고 있다. 물론, 작품이 재밌어야 한다는 기본 전제만큼은 어떤 플랫폼 위에서도 흔들리지 않겠지만.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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